[토요단상] 대한제국의 슬픈 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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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1   |  발행일 2018-09-01 제23면   |  수정 201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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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5월22일 문재인 대통령 부처는 미국 워싱턴 로건서클에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개관식에 참석하였다. 뜻 깊은 행사였지만 다른 큰 뉴스에 묻혀 버렸다. 필자가 그 공사관을 찾은 것은 두 달 후인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이 공사관의 원래의 이름은 ‘대조선주차미국화성돈공사관(大朝鮮駐箚美國華盛頓公使館)’이었는데, ‘화성돈’이 곧 워싱턴이다. 뉴욕을 ‘뉴육(紐育)’, 런던을 ‘륜돈(倫敦)’, 로스앤젤레스를 ‘라성(羅城)’으로 부를 때 이름이다. 그 옛 공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은 시원하고 첫눈에 어느 호화로운 저택을 방문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대한 태극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방문 예약을 한 덕택으로 한종수 박사가 우리를 맞이해 방방이 설명을 해주었다.

1889년 2월 조선왕조는 워싱턴에 이 공사관을 개설하였으며, 그로부터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외교권을 강탈하기 전까지 16년간 공사관은 활발한 외교활동의 중심무대였다고 한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 때 일제는 이 건물을 단돈 5달러에 강제 매입해서는 1만달러에 되팔아 먹었다고 한다. 그 족속의 패악은 어딘들 다르랴. 재미 한인사회에서 이 건물을 되찾자는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2015년 12월에 원형복원 공사에 착수해 금년 5월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빅토리아식 건축물로 내부는 당시의 사진을 바탕으로 최대한 원형에 가깝도록 복원했다고 한다. 1층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객당(客堂)’, 사교장 기능의 ‘식당(食堂)’,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던 ‘정당(正堂)’, 2층에는 공사 침실, 공사 집무실, 공관원 사무 공간, 서재 등이 있었다. 3층은 공관원들이 묵던 공간인데 전시실이 되어 있었다.

한 박사가 설명한 사진 한 장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두 여인의 사진인데 한 사람은 이완용의 아내였고, 다른 사람은 대리공사 이채연(李采淵)의 아내라고 하였다. 이채연이 누구던가? 이채연은 칠곡 사람으로 1888년 초대 공사 박정양이 부임할 때 이완용·이상재 등과 함께 발령 받고 가서 훗날 대리공사가 된 인물이다. 한 박사는 “이채연 공사의 둘째 아내 성주배씨가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영부인 프랜시스와 한 교회에 다니는가 하면 또 그 영부인을 초청해 성대한 연회를 열기도 했다”고 했다.

필자는 이 공사 부부의 행적을 120여 년 전 뉴욕타임스를 들춰서 확인해 보기로 하였다. 이완용과 이채연이 워싱턴 거리를 걸을 때의 모습이 1890년 8월의 기사로 뜬다. ‘그들의 복장이 하도 특이하여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가는 둘째 문제다. 그들은 제 나라라면 가마를 탈 인물들인데, 워싱턴이 워싱턴인지라 잰걸음으로 걸어 다닌다. 그런데 스커트가 걸음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또 아이들이 그들을 따라다니며 괴롭힐 만도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것은 참으로 칭찬할 만하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워싱턴 거리를 활보한 것이 그들에겐 진풍경이어서 이렇게 기사화한 것이리라.

1892년 2월3일 기사다. ‘이채연 공사 부부는 백악관이 외교관들을 위한 만찬 초청에 응했을 뿐만 아니라 그 만찬에 앞서 그날 4시경에 많은 미국 정계인물과 외교관을 한국 공사관으로 초청하여 다회(茶會)를 베풀었다. 이날 이채연의 부인은 연푸른 채단 두루마기를 입었으며 그녀의 영어가 완벽하여 대화를 시작할 때 전혀 스스럼이 없었다.’ 그녀의 영어 실력이 당시 외교가의 화제였음을 암시한다. 이 부부가 1893년 3월25일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를 연 것도 간략하게 보도한다.

그런데 이들 기사처럼 그들의 생활이 어찌 호사스러울 수 있었으랴. 이채연 부부든 공관원이든 들려오는 국내 소식을 생각하면 하룻밤이라도 발 뻗고 잠들 수 있었을까. 나라는 건져내기 어려운 수렁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지 않았던가. 돌이켜 보면 이 공관만큼 우리 국민이 직접 가서 보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곳은 없을 것 같다.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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