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자영업 괴담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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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30   |  발행일 2018-08-30 제31면   |  수정 2018-08-30
[영남타워] 자영업 괴담

“마흔넷에 늦장가 든 프레스공 출신 상규씨와 그의 아내 베트남댁 흐응씨가 한숨으로 말아먹은, 지금도 일년 넘도록 불 꺼진 빈 점포 앞을 지날 때마다 사기꾼 새끼 프랜차이즈 사업주를 욕하다가 도시의 어리버리한 소시민을 싸잡아 연민하다가 내 지난날의 모든 실패가 속수무책 울컥울컥 한꺼번에 역류하는 것이다. 빈 점포는 구겨진 꿈들의 잔해로 가득했다.”(권순진 ‘상규씨와 흐응씨의 구겨진 꿈’)

알바 없이 밤낮으로 교대하며 아침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악착같이 일했지만 상규씨와 흐응씨의 가게는 6개월을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상규씨와 흐응씨처럼 생존을 위해 자영업에 나섰다가 망해버린 사연은 주위에 넘쳐난다. 최근 경제 뉴스는 이런 내용들로 ‘도배’ 중이다.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문제는 창업과 폐업으로 이어지는 자영업의 악순환이다. 폐업을 예상하면서 창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영업자의 현실이다. 대구지역에서도 2009년 한 해 동안 4만4천여 명이 사업을 새로 시작하고 3만6천여 명이 가게문을 닫았다. 대구지역 전체 신규 사업체 가운데 개업 이후 1년 만에 26.9%가 문을 닫고 2년째엔 절반 정도인 43.8%가 폐업을 하고 있다. 5년이 지나면 전체의 32.5%만이 살아남는다.”

2011년 10월 작성했던 기사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마주한 현실은 여전하다. 그때 “IMF보다 더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있다”고 토로했던 사장님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여전히’ IMF보다 더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있을까. “말이 좋아 사장이지 인생 망치는 지름길이야.” 그랬던 그들이,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여전히’ 치킨집을, 음식점을, 편의점을 열고 있을까.

못 살겠다는 자영업자들의 아우성이 높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의 후유증을 부인할 수 없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최저임금 부담까지 더해지니 버텨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승전 최저임금일 수는 없다. 자영업자 10명 중 7명은 혼자 가게를 꾸려가거나 가족의 도움을 받고 있다. 최저임금만으로 문제를 풀어서는 정답을 맞히기 어려운 까닭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 창업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하지만 성공 신화를 꿈꾸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뒤늦게 깨닫는 건 치열한 경쟁구도, 턱없이 높은 임차료, 최소한의 생존조차 보장하기 어려운 열악한 수익구조다. 자영업 창업은 그렇게 ‘도시괴담’이 됐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은 전체 취업자의 25.4%로 미국(6.3%) 일본(10.4%)보다 훨씬 높다. 음식숙박업의 3년 생존율이 30%에 불과할 정도로 과당경쟁이 심하다.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 1이 자영업자인 이런 나라는 세상에 한국밖에 없다. 산술 평균만으로 식당 한 곳당 100여 명의 손님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셈인데 어찌 성공을 꿈꾸겠는가.

높은 임차료도 발목을 잡는다. “뼈 빠지게 일해서 임차료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푸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자영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드니 장사가 안돼도 임차료는 떨어지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진다. 장사가 잘되는 곳이 매물로 나올 리 없고, 안 되는 곳에 들어가 성공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절망이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다.

설상가상 가계는 부채에 눌려 소비를 늘릴 여력이 없고 인구까지 감소세다. 상황이 이런 데도 경기만 좋아지면 자영업이 살아날 수 있을까.

경제의 실핏줄이라 불리는 자영업자들이 무너지면 한국경제도 위험하다. 정답은 나와 있다. 기존 자영업을 충격 없이 구조조정하고 무분별한 신규 진입을 막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하고, 막다른 골목에 이른 이들을 받쳐줄 탄탄한 사회복지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자영업자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이며 자영업의 위기는 ‘사람의 위기’다. 더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치킨집을, 음식점을, 편의점을 여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은경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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