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일자리가 평화’… 속도에 답 있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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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7   |  발행일 2018-08-27 제31면   |  수정 2018-08-27
[월요칼럼] ‘일자리가 평화’… 속도에 답 있다
박규완 논설위원

한국인은 밥을 빠르게 먹는다. 심지어 흡입하듯 후닥닥 한 그릇을 해치운다. 한데 과속 식사는 건강의 적이다. 빨리 먹으면 덜 씹게 돼 소화·흡수·대사에 좋지 않고,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혈관·간·췌장의 기능을 서서히 저하시킨다. 또 뇌에서 포만감을 인지하지 못해 과식하기 십상이다.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김도훈 교수가 8천771명을 대상으로 식사 속도와 건강지표를 분석한 결과, 식사 속도가 빠를수록 섭취하는 칼로리가 늘어나 체질량 지수가 증가하고 혈관 벽에 쌓이는 중성지방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속 운전은 안전의 적이다. 유류비 절감에 유효한 ‘경제속도’ 역시 과속과는 거리가 멀다. 적정한 속도 유지는 안전과 연비 효율성을 보장한다. 적절한 속도가 식사와 운전에만 필요할까. 정부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최저임금에 대한 과속 우려가 크다. 노무현정부에서 노동부를 이끌었던 이상수 전 장관은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 등을 충분히 시뮬레이션 하지 않고 너무 급박하게 추진했다”고 일갈했다. 진보 경제학자 출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진보진영의 조급증·경직성 때문에 문재인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고스란히 고용쇼크로 돌아왔다. 지난 7월 취업자 수 증가규모는 5천명. 학점으로 치면 F다. 소득주도 성장이 아니라 소득포기 성장을 해야 할 판이다. 물론 일자리 절벽이 전적으로 최저임금 탓이라고만 할 순 없다. 조선·자동차 등 제조업 구조조정, 고령화에 따른 취업인구 감소도 영향을 끼쳤을 터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결정적 동인(動因)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저임금과 연관이 큰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취업자와 일용직·임시직 근로자 수가 급감한 게 이를 뒷받침한다.

유자효 시인의 ‘속도’란 시가 있다. ‘속도를 늦추었다/ 세상이 넓어졌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세상이 더 넓어졌다// 아예 서 버렸다/ 세상이 환해졌다’ 작금의 일자리 상황을 빗대 이 시를 패러디 해봤다. ‘최저임금을 올렸다/ 고용시장이 좁아졌다// 최저임금을 더 올렸다/ 고용시장이 더 좁아졌다// 최저임금을 확 올렸다/ 아예 고용이 멈추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은 방향은 맞다. 극단으로 치닫는 소득 양극화를 그나마 완화하는 해법이어서다. 하지만 올 2분기 분배지표는 외려 더 악화됐다. 왜일까.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훼손하면서 하위계층의 소득이 줄어든 까닭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개혁 등의 혁신성장이 진척되지 않으면서 소득주도 성장이 지향하는 경제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지난해 최저임금 16.4% 인상은 과했다. 내년에 적용될 10.9% 인상도 마찬가지다. 만약 지난해도 올해도 7% 안팎에서 결정됐으면 어땠을까. 천문학적 일자리 관련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을 테고, 고용 성적표도 C학점 정도는 받지 않았을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저치로 내려앉는 일도 아마 없었으리라. 평균 임금 인상률이 3~4%인 상황에서 매년 7%씩만 꾸준히 올려도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랬으면 소득주도 성장도 폐기 논란에 휘말리지 않았을 게다.

다음 중 가장 약자는 누구일까. ①대기업 노조원 ②소상공인 ③영세업체 근로자 ④알바생 ⑤실업자. 문재인정부의 정책 기조는 친노동·친약자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만큼은 ‘친노동’의 압승이다. 결과적으로 친노동 정책이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을 궁지로 내모는 형국이 됐다. 속도조절에 실패한 탓이다. 이제라도 ‘친노동’보다 ‘친약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속도에 답이 있다. 최저임금도 52시간근로제도 천천히 가야 한다. 문 대통령은 올해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언급하며 ‘평화가 경제’라고 했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필자는 이 말이 하고 싶다. ‘일자리가 평화’라고.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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