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너의 결혼식’ 박보영

  • 윤용섭
  • |
  • 입력 2018-08-24   |  발행일 2018-08-24 제43면   |  수정 2018-08-24
“3초만에 빠지는 사랑 항상 꿈꿔…영화처럼 제대로 경험하고 싶어”

승희는 3초 만에 결정된다는 운명 같은 사랑을 믿는다. 내가 상대방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하는지보다 얼마나 적절한 순간에 등장하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게 운명이고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결국 타이밍이라는 얘기다. 승희를 연기한 박보영 역시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순간의 타이밍이 안 맞으면 내가 아무리 상대방을 좋아한다고 해도 서로 이루어질 수 없을 때가 있다.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한 것도 타이밍이 잘 맞았고, (김)영광 오빠랑 같이 하게 된 것도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너의 결혼식’은 그런 승희와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우연(김영광)의 10년간에 걸친 엇갈린 사랑을 그렸다. ‘건축학개론’ 이후 6년 만에 찾아온 첫사랑 이야기라는 점이 반가운 한편, 쿨하고 까칠한 성격의 승희는 그간 박보영이 보여준 모습과 상반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캐릭터를 작품 선택시 우선 순위로 꼽는다”는 박보영에게도 사랑과 감정에 충실한 승희는 동경의 대상이 될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온 인물이다. “승희는 우유부단하지 않고 자기 감정에 굉장히 솔직하다. 실제 내 성격과 상반되는 것은 물론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들과도 사뭇 다른 느낌이 있다. 그래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역설적이게도 승희는 이제껏 연기했던 그 어떤 인물보다 박보영스럽다.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든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박보영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이석근 감독의 의도가 이해된다. 하긴 고등학생부터 사회 초년생까지 10년간의 변천과정을 모두 아우를 수 있으면서 연기력까지 갖춘 배우가 박보영말고 또 누가 있을까 싶다. 게다가 어떤 배우와도 완벽한 케미를 자랑하고 판타지를 현실 로맨스로 승화시키는 그녀가 아닌가. 밝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살짝 덜어낸 대신, 한층 성숙해진 여성미를 장착하고 돌아온 그녀를 흥미롭게 마주했다.

“사랑은 적절한 순간 등장하느냐 따른 타이밍
작품선택·우연役 김영광과 호흡, 좋은 타이밍
우유부단하지 않고 감정에 솔직한 승희에 매력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 비해 가장 현실적 인물”

“이젠 사랑스러움보다 연기적 욕망 좀더 따져
실제 감정 생기기까지 시간 오래 걸리는 타입
드라마처럼 아픔 많이 겪어야 첫사랑이라 생각
서른 앞, 동그랗게 스펙 넓혀가는 배우 될 것”


20180824

▶오랜만에 마주한 로맨스 영화라 반갑다. 게다가 풋풋한 첫사랑을 다뤘다.

“나 역시 평소 로맨스 장르를 하고 싶었던 터라 너무 반가웠다. 이 시나리오는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현실적이었다. 전작들에선 말을 못 하는 늑대와 서로 교감을 나눠야 했고(영화 ‘늑대소년’), 귀신에 빙의를 해서 나인데 내가 아닌 사람과 로맨스를 하고(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힘이 너무 세서 툭 치면 상대방이 날아가는 그런 인물(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들을 연기했다. 그러다보니 있는 그대로를 주고받는 현실적인 이야기와 인물이 그리웠다. 덕분에 촬영하는 내내 설레고 행복했다.”

▶드라마에선 대중이 바라는 모습을 선택하고, 영화는 개인적인 욕심을 내는 편이라고 했는데 이번 영화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대중이 나를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건 대체적으로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이 접하게 되는 드라마에선 그런 쪽을 지향한다. 반면 영화에서만큼은 연기적 욕심을 내고 싶다. 영화는 늘 하고 싶지만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이왕 할 거라면 나의 욕망을 펼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게 된다. 승희 역시 마냥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나에겐 조금 특별했다.”

▶상대역을 빛나게 하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런가.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웃음) 아무튼 그렇게 평가받는다니 기쁘고 고맙다. 사실 혼자 잘한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거다. 내가 운이 좋게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너의 결혼식’도 마찬가지인데, 이 영화는 우연이의 영화이고, 우연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가 빛나야 잘 될 수 있는 영화라는 얘기다. 그 점에서 영광 오빠를 우연 역에 캐스팅한 건 정말 탁월했다. 오빠는 우연 그 자체였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떠올렸던 우연보다 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만들어낸 덕분에 자칫 집착하는 캐릭터로 비칠 수 있었던 우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둘의 만남을 풋풋한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반면 난 한 게 별로 없었다. 현장에 가서 빨리 친해지는 것밖에는.”

▶서로가 첫사랑인 두 사람이지만, 승희 입장에서 우연은 남자친구로서 아쉬움이 많은 것 같다. 그와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승희가 자기 인생의 걸림돌이 됐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나서인데.

“두 사람이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만남을 이어가는 감정이 굉장히 현실적이어서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아, 이런 건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때문에 그 감정에 찬물을 끼얹는 우연의 말에 나 역시 화가 났고, 그에게 이별을 고한 승희가 충분히 이해됐다. ‘네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보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못 잊는 거다’라는 승희의 대사가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대부분의 여성 관객도 나와 같은 생각일 듯하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게 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인지 이해를 못하더라. 같은 사랑과 이별을 해도 남자와 여자가 생각하는 게 다를 수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말 그대로 첫사랑 연대기다. 연기하면서 특별히 고민했던 부분이 있다면 뭔가.

“영화상으로 다 보이지 않는 디테일한 상황들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것인지, 어느 만큼 관계가 멀어지고 소원해진 것인지, 또 다시 만나서 가까워졌다가 어떤 계기로 멀어지는 것인지, 과정 하나하나를 보여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끼고 이해하게끔 만들려고 노력했다. 사실 가장 어려웠던 건 10대 때의 그런 풋풋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어차피 내가 10대가 아니니 풋풋함을 표현하는 건 어렵고 대신, 뒷부분에서 조금 성숙해진 나의 생각과 행동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소신껏 연기했다.”

▶극중에서처럼 3초 만에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경험이 있나.

“나는 아직 경험을 못해 봤지만 첫눈에 반하는 건 항상 꿈꿔왔다. 물론 누군가를 만나긴 했다. 하지만 첫사랑이라고 기억될 만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첫사랑의 정의는 그냥 단순하게 좋아서 만나고 헤어지는 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뭔가 얘깃거리가 있고, 엄청난 아픔을 겪어야 첫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좀 까다롭고 신중한 편이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래도 사랑은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 막연히 이런 감정이겠지라고 연기하는 것과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껴본 감정을 다시 끄집어내 표현하는 건 다르다. 선배들이 늘 배우는 많이 경험하고 배워야 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국민여동생’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해서 어느덧 내년이면 나이 서른이다. 느낌이 어떤가.

“예전에는 서른이면 정말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별로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그때도 지금의 고민은 계속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때는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이 정말로 듣고 싶지 않았다. 나에겐 다른 모습도 많은데 왜 자꾸 그 말만 할까 싶은 생각에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과도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느꼈던 건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그래도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기대감이 생기는 건 있다. 우선 연기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모습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조금씩 달라진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스펙트럼을 조금씩 동그랗게 넓혀 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가 최종 목표라면 그 꿈은 이룬 셈이다. 앞서 말했던 고민은 뭔가.

“고민이 있긴 한데 그 고민이 다른 사람에겐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 그건 어려서부터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고 평가를 받아온 것에 대한 힘듦의 고민이 아닌, 나 스스로 자기애가 너무 부족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늘 나를 책망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냥 편하게 나를 받아들이면 될텐데 그렇지 못했다. 항상 ‘이런 게 잘못된 거야’ ‘이렇게 생긴 게 이상한 거야’라는 식으로 내가 나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났으니까.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 순진했고 덜 성숙했던 탓에 그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알았다.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면.

“부모님이 시골에 집을 하나 구해서 살고 계신다. 마을 주민이라고 해봤자 할아버지와 할머니 몇 분 살고 계시는 아주 시골인데 한동안 내려가서 농사일을 도와줬다. 일할 때 입는 바지에 장화를 신고 걸어 다녀도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니 너무 편했다. 집 텃밭에는 상추와 고추를 심고, 낮에는 툇마루에 누워서 책을 보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감상하면서 지냈다. 이게 진정한 행복이구나 싶었다. 지난해는 유독 일하는 게 힘들고 벅찼는데 여기서 지내다보니 절로 힐링이 됐다. 그러다보니 모든 게 감사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끼며 살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유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김현수 dada2450@hanmail.net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