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간송미술관 특별전을 보며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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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3   |  발행일 2018-08-23 제31면   |  수정 2018-08-23
[영남타워] 간송미술관 특별전을 보며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요즘 대구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비롯해 김홍도, 안견, 신사임당, 정선, 김정희, 장승업 등 조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간송미술관 특별전(조선회화명품전)이 열리고 있고,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 작품전시가 지난 19일까지 열렸기 때문이다. 미술애호가는 물론 미술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던 이들이라도 한번쯤은 보고 싶어한 작품을 대거 선보이니 발걸음이 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소 미술을 좋아하던 기자에게 이런 좋은 전시가 열리고, 이 좋은 전시를 보러가는 이들이 많다는 소식은 분명 반갑다. 공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는 듯한 미술에 대한 관심이 이런 대형전시를 통해 한층 커지기를 바라는 기대도 생긴다. 그리고 오랜 경기침체로 인해 위축된 미술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 좀더 활기를 띠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런 반가움 속에 살짝 두려움이 깃든다. 기자의 소심한 성격인지 모르나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큰 전시에 익숙해진 시민들의 눈이 그곳에만 머물러 작지만 나름 의미있는 전시에는 소홀해지지나 않을까 하는 기우다.

10여년 전 대구에서 뮤지컬 ‘맘마미아’가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당시만 해도 지역에서는 뮤지컬을 장기공연하는 사례가 잘 없었는데 40여 일간 70여회 공연을 이어가며 6만여명의 발길을 이끌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지역에 뮤지컬 붐이 조성되었으며 올해 12회째를 맞이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도 추진하게 되었다. 하지만 뮤지컬 붐이 일면서 지역 연극계는 위축되어갔다. 연극 공연장을 찾는 발걸음이 주춤해지기 시작했고 일부 극단들은 발빠르게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연극계가 침체된 것은 뮤지컬의 등장 이외에 다른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려하고 강한 매력을 맛본 이들이 정통연극이 주는 담백한 맛을 잊어버린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강한 맛에 길들여진 이들은 자연식품 그대로가 가진 담백한 맛을 ‘맛이 없다’고 착각한다. 자연식품은 그들 나름대로의 매력적인 맛을 가지고 있다. 담백한 맛을 아는 이들은 충분히 맛을 아는데, 그 맛을 모르는 이들은 제대로 맛을 찾지 못한다. 다양한 맛을 본 사람은 강한 맛과 담백한 맛을 구분할 줄 안다. 하지만 각각의 다른 맛에만 길들여진 이들은 그 맛의 울타리 안에 갇혀 다른 맛을 쉽게 찾기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문화예술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좋은 작품을 볼 수 있는 대형전시에 많은 시민이 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고 앞으로도 이어져야 할 흐름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다양성이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미술계에는 다양한 장르, 다양한 규모의 전시가 있다. 이런 다양성을 즐기는 것이 건강한 예술생활을 위해 필요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대구미술관을 비롯해 대구시 등 관련기관에서는 너무 관람객 수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3년 일본 현대미술가 쿠사마 야요이 개인전에 30여만명이 다녀감으로써 미술관과 시에서도 관람객 수에 대한 기대가 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관람객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얼마나 큰 감동을 가지고 그 감동이 바탕이 되어 미술, 나아가 예술을 사랑하는 힘을 키워가느냐가 중요하다. 이 전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전시를 시발점으로 해 앞으로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를 보고 다양한 예술을 즐기는 문화시민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필요할 것이다.

미술가들은 단체관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수의 사람이 보면 나도 봐야 소외를 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획일성이 조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분야가 그러하지만 특히 예술계에서는 소수(少數)가 중요하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어떤 소수나 어떤 주변의 출현은 역사적 책임성을 가진 새로운 흐름의 등장을 의미한다”고 했다. 소수에서 다양성이 만들어진다. 예술의 가치는 다양성에 있다. 이 다양성에서 독창성이 나온다. 그 독창성이 결국 예술의 핵심이다. 예술인의 그 다양성을 존중하고 즐기는 것이 관람객의 또 다른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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