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쏙쏙 인성쑥쑥] 진실로 그 중용을 취하라(允執其中)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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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0 07:48  |  수정 2018-09-21 15:07  |  발행일 2018-08-20 제18면
20180820

엊그저께 울산에 사는 큰아들이 휴가를 얻어 대구로 왔습니다. 무더위를 피해 모두 바다로 가는데 부모를 찾아오니 마음 한편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날 저녁에 잠을 놓친 9개월된 둘째 손자가 밤 11시쯤에 방문을 밀고 거실로 엉금엉금 기어 나왔습니다. 낯선 환경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리면서 할아버지 앞에 왔습니다. 너무 귀여워서 덥석 안았습니다. 7세 큰손자가 쪼르르 달려와서 할아버지 무릎에 앉으려고 합니다. 두 손자를 함께 무릎에 앉혔습니다. 힘이 버겁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핍니다. 손자들에겐 ‘마땅함(宜)’이 필요하고, 할아버지는 ‘알맞음(中)’이 필요하겠지요.

자사(子思)는 중용에서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未發)을 중(中)이라 한다. 드러나서(已發) 다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라고 했습니다. 미발(未發)의 중(中)은 마음속에 있는 치우침이나 편벽함이 없는 성품을 말합니다. 아직 사물을 접촉하지 않아서 희로애락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입니다. 사물을 확실하게 구별하지 못하며, 예상치 못한 온갖 행동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반면 드러나는 이발(已發)의 중(中)은 이미 모든 사항이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당연히 기뻐해야 할 경우엔 기뻐하고, 화를 내야 할 때엔 화를 내기도 하며, 울고 싶을 경우는 울어야 하며, 즐거운 곳에서는 즐거워야 합니다. 도리에 어긋남이 없으면 됩니다. 마음에 따라서 반응하면 됩니다. 다만 어그러짐이 없고 매사 통하면 됩니다. 자사는 이발(已發)의 중(中)을 화(和)라고 합니다. 중화(中和)가 바로 중용(中庸)입니다.

중국의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천자의 지위를 선양합니다. “아! 그대 순이여! 천명의 운수가 그대 몸에 있으니, ‘윤집기중(允執其中)’하라. 천하의 백성이 곤궁해지면 하늘이 주는 부귀가 영영 끊어지리라”하고 훈시합니다. ‘윤집기중’은 ‘진실로 그 중용을 취하라’는 뜻입니다.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선양할 때도 또한 이 말을 하였습니다. 폭군 걸(桀)왕을 몰아내고 상나라를 세운 탕임금도 그랬습니다. 음탕 무도한 주(紂)왕을 민의로 쫓아내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도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이 따르게 너그러웠으며, 백성들이 믿음을 갖도록 성실하였습니다. 실적이 오르게 능률적이었으며 만백성이 기뻐하도록 공정하였습니다. ‘진실로 그 중용을 취하라’는 덕의 정치를 하였습니다.

송나라 주자(朱子)는 “어느 것에나 편벽되거나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평범하고 떳떳한 이치가 중용”이라고 말합니다. ‘불편불의(不偏不倚) 무과불급(無過不及)’의 마음이 중용입니다.

얼마 전 마린온 헬리콥터 사고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이 시민조의금을 해병대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영결식장의 스크린에 비친 사진을 보며 “아빠다!”하고 좋아했다던 손자들을 안고 펑펑 눈물짓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위대합니다. 그 할아버지에겐 평범한 듯 거리낌이 없는 떳떳한 마음씀씀이가 ‘진실로 그 중용을 취한’ 마땅함과 알맞음이겠지요. 박동규 <전 대구 중리초등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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