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카운터스·목격자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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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7   |  발행일 2018-08-17 제42면   |  수정 2018-08-17

★카운터스
전직 야쿠자 출신, 日 혐한세력 제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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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 2013년 2월 일본 도쿄 한복판, 한국 음식점과 가게가 밀집된 신오쿠보 한인타운에 과격한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든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가 혐한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 한편에선 ‘차별하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이들의 위협과 선동을 반사하는 무리가 있었다. 이들은 몸으로 혐한시위대를 막고, 거리에 떼로 주저앉아 행진을 방해하며 물리적인 충돌도 불사했다. 혐한시위에 맞서 반혐오·반차별 운동을 펼친 카운터스다. 카운터스는 일본 내 인종혐오 시위가 극에 달하던 2013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모인 행동주의자들의 모임이다. 영화 ‘카운터스’는 이들의 활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혐한 시위에 맞서는 반혐오·반차별 운동 모임
언론·정치권 움직여 ‘혐오표현금지법’이끌어



‘카운터스’의 초점은 카운터 운동을 처음 제창한 노마보다 이 운동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직 야쿠자 출신 다카하시에게 맞춰진다. 그는 혐오시위에 환멸을 느껴 야쿠자 생활을 그만두고 카운터스에 가입, 현장 최전선에서 시위대를 제압할 그룹 오토코구미를 결성했다. 작가부터 음악가, 사진가, 저널리스트, 변호사, 배달부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이 조직에 합류했다. 그들은 “혐오는 남자가 할 짓이 아니다”라는 다카하시의 신념과 거친 말, 행동 이면에 숨겨진 그의 따뜻한 마음에 감화됐다고 말한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지만 ‘카운터스’가 천착한 건 카운터 운동이 만들어낸 새로운 이념구도다. 혐한시위대와 카운터스의 대결이 아닌, ‘일본 사회’ 대 ‘인종주의자의 구도’로 혐오 세력을 제압해 나간다. 이와 함께 캐릭터들의 면면과 생각을 전면에 내세워 이들의 행동을 이끈 사회의 풍경을 전시한다.

다카하시와 대척되는 인물은 재특회 창설자 사쿠라이다. 그는 “혐오는 인간의 본성”이라며 끔찍한 차별과 혐오 발언으로 많은 이들을 선동한다. 하지만 소수로 출발했던 카운터스는 점차 많은 이의 호응을 얻어 혐한시위대 규모를 넘어선다. ‘헤이트스피치’(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 발언) 문제를 공론화하고, 언론과 정치권을 움직여 아베 정부 아래에서 일본 최초로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을 끌어내는 성과도 거뒀다.

연출은 재일 한국인 이일화 감독이 맡았다. 2013년 3월 처음으로 혐한시위를 목격한 그는 “다큐를 통해 일본 사회의 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혐오와 차별,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다큐다. (장르:다큐멘터리 등급:15세 이상 관람가)


★목격자
살인사건 방관하는 주민…소름돋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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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을 봤고, 살인자는 나를 봤다.” 생활 밀착형 스릴러를 표방한 ‘목격자’는 이를 키워드 삼아 111분의 러닝타임을 긴장감 있게 몰고 간다. 아파트 한복판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지만, 그보다는 아파트 가격 하락을 걱정하는 주민들. 영화는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하며 내 일이 아니면 무관심한 현대인들의 집단 이기주의와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제보율이 낮아지는 방관자 효과(제노비스 신드롬)를 스릴러 장르에 덧대 신랄하게 꼬집는다.

회식 후 늦은 밤 귀가한 상훈(이성민). 밖에서 들리는 여자의 비명소리에 베란다로 향한 그는 우연히 살인현장을 목격한다.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지만 범인(곽시양)의 눈과 마주치자 멈칫한다.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상훈의 아파트 층수를 세고 있는 범인. 어쩔 수 없이 신고를 포기한 상훈은 그날 이후 살인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범인·목격자·형사 추격전…현실적 공포·긴장감
아파트 가격 걱정 앞서는 집단이기주의도 꼬집어



‘목격자’는 아파트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목격자 상훈과 그를 쫓는 범인의 추격전을 숨가쁘게 그려간다. 내 가족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에 범인을 바로 앞에 두고도 신고하지 못한 상훈의 딜레마가 그 중심이다. ‘저 상황 속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되지만 눈앞에 있는 정답을 두고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어쩌면 그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상훈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을 대변한다.

관건은 이런 상훈의 감정에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풀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아파트 한복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라는 콘셉트와 영화 초반부터 범인을 밝히고 시작한 접근방식은 결과적으로 주효했다. 현실적인 공포를 사회적 이슈 안에 녹여내는 기제로 활용한 덕분에 영화에는 스릴러 그 이상의 의미까지 담겼다. 특히 살인사건을 방관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살풍경은 소름 돋는 현실과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까지 전달한다.

다만 장르적 접근을 위해 후반부에 보여준 이질적인 행보는 다소 생뚱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반전 강박증 없이 뚝심있게 주제 의식을 향해 달려간 건 미덕이다. 독보적인 존재감과 색깔로 매번 밀도있는 연기를 펼치고 있는 이성민은 여전히 빈틈없고, 그를 쫓는 형사 재엽 역의 김상호와 상훈의 아내 역 진경은 영화의 긴장감을 견인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범인 태호 역을 위해 13㎏을 증량했다는 곽시양의 극 중 모습도 인상적이다. ‘낙타는 말했다’ ‘그날의 분위기’의 조규장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장르:스릴러 등급:15세 이상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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