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 신선사(神仙寺)마애불상군

  • 박진관
  • |
  • 입력 2018-08-17   |  발행일 2018-08-17 제36면   |  수정 2018-09-21
신라최초 석굴사원…바위면 10구 불상에 공양
20180817
단석산 신선사마애불상군. 국보 제199호로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이다.
20180817
북암의 삼존불과 반가사유상. 삼존불 모두가 왼손으로 본존불을 가리키고 있다.
20180817
남암의 지장보살상. 가장 마모가 심하며 보살상 아래의 명문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20180817
관음전 앞에 서면 요사채 지붕 너머로 첩첩 산과 먼 허공이 열린다.
20180817
신선사 표지석. 작은 주차공간이 있는 곳이다. 신선사까지는 300m.

욕심이었다. 몇 걸음 더 걸으면 될 것을, 땀 좀 흘리면 되는 것을. 가파른 길이다. 과장하면 80도는 될 듯하다. 모퉁이는 직각으로 꺾여 있다. 후퇴다. 반걸음씩, 끼익 미끄러지며, 등골이 오싹오싹하다. 이제 다시 반걸음씩 전진한다. 두 번의 모퉁이를 돌자 등산안내판이 서 있다. 이곳까지 차가 오를 수 있는 모양이지만 절대 무리수다. 여기서부터는 사륜구동만 오를 수 있다는 안내가 있다. 오르막을 바라본다. 포기할까. 초록색 메뚜기가 펄쩍 펄쩍 산을 오른다. 작은 보라색 꽃들이 길섶에 누워 향기를 날린다. 어디선가 염불 외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오르라는 것이겠지. 태산이 높아 봐야 하늘 아래 뫼가 아닌가.

신라인들이 신성시한 오악 중 ‘단석산’
화랑 수련·김유신 무술연마 칼로 벤 바위

신선사 마애불상군
관음전 오른쪽 거대한 바위 군집한 석굴
지붕 흔적…현재 강화유리로 덮어 보호
서쪽 입구 들어서자 관음보살상과 마주
마모심해 홀로 외롭게 보이는 지장보살

◆칼로 바위를 베다, 단석산

해발 827.2m. 경주에서 가장 높다는 단석산(斷石山). 경주 토함산(吐含山), 금강산(金剛山), 함월산(含月山), 선도산仙桃山)과 함께 신라인들이 신성시한 오악(五嶽) 중에서 중악이라 하였던 산이다. 산은 경주시 건천읍과 산내면에 걸쳐 있다. 백제군들이 지리산을 넘어 함양과 청도를 거쳐 경주로 들어오던 길목이다. 원래 이름은 월생산(月生山)으로 신라시대 화랑들이 이 산에서 수련했다고 전한다. 그들은 반걸음씩 오르지 않았겠지. 날듯이 성큼성큼 걸었겠지. 10대가 지난 지 너무 오래 되었다.

김유신(金庾信)은 17세 때 이 산으로 들어와 목욕재계하고 고구려와 백제와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천지신명께 빌었다. 그러자 4일 만에 난승(難勝)이라는 한 노인이 나타나 신검(神劍)과 비법이 담긴 책을 주었다고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 등에 기록되어 있다. 김유신은 그 칼로 무술을 연마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는데, ‘베어 놓은 큰 돌들이 산더미 같이 쌓였고, 그 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은 김유신 사후 800여 년이 지난 기록이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더 지났지만 신화는 죽지 않는다. 이후부터 산 이름은 단석산이다. 산 정상에 김유신이 베었다는 ‘단석’이 남아 있는데, 최근에는 특정 바위가 아닌 여러 곳에 산재한 비슷한 바위들을 뭉뚱그려 단석이라고 한단다. 습하다. 점점이 내려앉은 햇살은 미끄러지지도 않고, 산새들 지저귐은 천국에서부터 들려오는 듯하다. 염불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환청이 아니라 실제다. 신선사(神仙寺) 표지석이 보인다. 다 왔구나! 했는데 아니다. 튼튼해 보이는 몇 대의 차가 서있고 높은 나뭇가지 속에 스피커가 숨어 있다.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솔직히 속았다고 생각하지만, 격려와 응원이라고 믿기로 한다. 다시 산길. 산악 오토바이에 최적화된 듯한 너비다. 오를수록 염불 소리는 작아지다 사라진다. 그리고 조금씩, 건물들이 보인다. 해우소, 요사채, 관음전, 산령각 등이 아파트 테라스처럼 자리하고 있다. 관음전 곁에 앉은 유난히 머리가 큰 석불이 요사채 지붕 너머 첩첩 산과 먼 허공을 바라본다. 한 사내가 요사채 툇마루에 앉아 발을 주무르고 있다.

관음전 오른쪽으로 몇 걸음 가면, 거대한 바위들이 군집해 있다. 마치 김유신의 칼에 베인 듯한 바위들이다. 가까이 가 보면 동, 남, 북 3면이 갈라진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석굴이다. 바위 면에는 보살입상, 여래입상, 반가사유상 등 10구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상인암(上人岩)이라고도 하고 주민들은 탱바위라 부른다. 이곳은 국보 제199호 ‘단석산신선사마애불상군’으로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이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와편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지붕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강화유리를 지붕으로 덮어 보호하고 있다.

서쪽으로 트인 곳이 입구다. 입구에서 왼쪽이 북암, 오른쪽이 남암, 정면이 동암이다. 정면으로 관음보살상과 마주하며 멈칫멈칫 안으로 들어선다. 왼쪽으로 삼존불과 반가사유상이 보인다. 반가사유상 아래쪽에는 버선 같은 모자를 쓰고 공양을 바치는 자세의 공양자상이 있다. 옆으로 쪽문과 같은 틈을 사이에 두고 큰 바위가 이어진다. 거기에는 바위면 전체에 미륵본존불상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 남쪽 바위는 가장 큰 한 덩어리인데 지장보살 혼자 외롭게 서 있다. 모든 불상 중에서 마모가 가장 심하다. 깡마른 노인이 웃는 것 같다. 지장보살 아래에는 19자씩 20행으로 이루어진 약 380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마모가 심해 전혀 알아볼 수 없지만 1969년 신라오악 조사단이 바위에 새겨진 명문을 분석하여 200자를 판독했다고 한다. ‘바위 아래 영험한 땅에다 절을 세웠는데, 신선사(神仙寺)라고 한다. 높이가 3장이나 되는 1존의 미륵석상과 2존의 보살상들은 그 모습이 미묘하면서도 단아하고 엄숙하다.’ 또한 7세기에 활동하던 자장(慈藏)의 제자 잠주(岑珠)가 신선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옛날 절 아래에 살던 한 젊은이가 이곳에 올라와 보니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젊은이가 바둑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이미 백발의 노파가 되어 있었다. 바둑 구경에 50년이 훌쩍 지난 것이다. 그 뒤부터 이 바위를 신선이 바둑을 둔 곳으로 불렀고, 절 이름도 신선사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리지붕의 석굴 속에 있으면 꽁꽁 묶인 느낌이 든다. 숨 조이는 신성이 엄습해온다. 아득하고 막막하다. 길은 하늘 길밖에 없는 것만 같다. 겨우 돌아서지만 무언가가 끌어당긴다. 산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겹게 석굴을 빠져 나오지만 뒷걸음치며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혼은 저곳에 남았다. 육신만이 하산한다. 스쳐 오르던 청년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순식간에 혼이 돌아온다. 한 가족이 재잘재잘 스쳐 오른다. 그제야 피가 돌고 숨을 쉰다. 사람이 구원이다. 혹여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에 가시려거든 홀로 가지 마시라. 구원이 되는 동지와 함께 가시라.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경주 방향으로 가다 건천IC에서 내린다. 청도 가는 20번 국도를 따라 5.4㎞ 가면 왼쪽에 신선사 표지판과 송선리 우중골 마을길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 무료 공영주차장이 있다. 여기서 신선사까지는 3㎞다. 조금 더 차로 올라 오덕선원 지나 ‘공원지킴터’에 주차해도 된다. 조금 더 올라 등산안내도가 있는 곳까지 일반차량이 오를 수는 있다. 여기서부터 신선사까지는 600m로 일반차량은 오를 수 없고 4륜구동만 가능하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