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안희정 재판

  • 박재일
  • |
  • 입력 2018-08-17   |  발행일 2018-08-17 제23면   |  수정 2018-08-17

‘안희정 1심 재판’이 다룬 범죄는 흔히 말하는 성폭력이지만, 흉기나 물리력에 의한 강간도 아니고, 지하철 등지의 공중밀집 장소의 성추행이나 이미 폐지된 간통죄도 아니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형법 303조에 따른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 또 하나는 성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상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다. 각각 5년 또는 2년 이하 징역형이나 벌금형이 내려질 수 있다.

간음이나 추행의 존재 여부 자체는 양측이 대체로 인정해 사건의 쟁점이 아니다. 초점은 범죄 구성요건상 ‘업무상 위력’이 있었는지에 맞춰졌다. 두 사람은 ‘도지사 안희정’의 감독을 받는 ‘여비서’라는 업무 관계이므로 당연히 업무상 위력의 전제는 있다. 다만 위력이나 위계가 행사됐는지에 대해선 재판부(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11부 재판장 조병구 부장판사)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증거가 부족해 무죄(형사소송법 325조)란 결론이다.

재판부는 A4용지 114쪽의 판결문을 작성했는데, 서울서부지원은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한 듯 9쪽의 별도 보도자료를 냈다. 다소 생소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사건 당시 피해자의 심리상태와 관련된 그루밍, 학습된 무기력, 해리현상, 심리적으로 얼어붙음 등이다. 그루밍은 피해자를 길들인 후 성적 착취를 하는 것이다. 해리현상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의 성격 일부가 떨어져 나와 본심과 달리 행동하게 되는 현상이다. 재판부는 이런 정황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 부분은 향후 2심 재판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단체는 위력에 저항할 수 있었으면 그게 위력이 되었겠느냐며 재판부를 성토했다.

재판부는 대신 우리나라의 성폭력 범죄의 입법 개선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No means No rule’ ‘Yes means Yes rule’이다.

이는 쉽게 말해 ‘노’라고 상대가 말했는데도 혹은 ‘예스’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성적 행위를 진행시킨다면 구체적 위력이 없어도 강간죄가 된다는 규정이다. 유럽 10개국, 미국 일부 주(州)에 도입돼 있다고 법원은 친절히 밝혔다. 재판부는 이 규정은 입법론적 문제이자 동시에 사회 전반의 성문화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고 별도로 결론짓기도 했다. 이번 재판이 국민적 관심을 받는 만큼 재판 결과에 대한 찬반 논쟁 속에 향후 이 같은 규정이 국회에서 본격 논의될지 주목된다. 박재일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