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死 ℃ - 인류 종말의 온도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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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6   |  발행일 2018-08-16 제31면   |  수정 2021-12-07 09:57
[영남타워] 死 ℃
변종현 사회부장

인류종말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말 200년 안에 이 지구를 떠나야만 하는 것인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지난 3월14일 세상을 떠나기 전 영국 데일리메일에 남겼다는 ‘유언’이 자꾸 생각나는 요즘이다. 호킹은 인류종말의 원인으로 인공지능, 소행성 충돌, 핵전쟁 등과 함께 기후변화를 일곱 손가락 안에 꼽았다. 그의 경고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는 되돌릴 수 없는 시점에 근접해 있으며, 지구는 460℃ 고온 속 황산 비가 내리는 금성처럼 변하게 될 전망이다. 외계 행성에서 거주할 준비를 하라는 그의 메시지는 달리 말해 지구에서의 인류종말은 피할 수 없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기록적인 지구촌 폭염과 가뭄이 계속되면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재앙을 우려하는 과학계의 충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21세기 들어 과학자들은 ‘평균기온 4℃ 상승’이 인류가 직면할 암울한 미래라고 단언한다. 화석연료 과다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증가, 플라스틱 분해과정에서의 메탄·에틸렌의 방출 등이 근본 원인이다. 온실가스로 분류되는 이것들은 지구 밖으로 방출돼야 할 복사에너지를 품으면서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있다. 해외 연구자료에 따르면 4℃ 상승 사태를 맞게 될 시점은 2070년대다. 비관론자들은 금세기 중반에 4℃, 후반에 8℃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불행히도 시기의 문제이지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 지구 기온 평균 4℃ 상승은 어떤 의미일까. 2012년 ‘세계는 왜 4℃의 상승을 피해야 하는가’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세계은행은 과거 500만년 동안 볼 수 없었던 혹서(酷暑)가 닥칠 것이라 전망했다. 또 동식물의 40%가 멸종 위기에 처하고, 특히 아마존 대부분과 아시아 열대우림의 25%가 소실 위험에 놓이게 된다. 식량 수확량 감소는 더 비극적이다. 미국의 옥수수·대두·면 생산량이 최대 82% 감소할 것이란 예상이다. 그린란드와 서부 남극지방의 빙하 역시 전부 녹아내려 해수면이 9.75m 이상 상승하고 세계 주요도시 3분의 2가 물에 잠긴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매년 25㎝씩 가라앉고 있다.

하지만 최악을 보지 못해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종말론적 성격을 지닌 기후변화를 대하는 인류의 자세는 오히려 긍정적이다 못해 낙관적이다. 과학자의 경고는 흘려들으면서 재앙을 극복할 과학, 혹은 종교의 힘은 믿는 모순된 심리다. 물론 이 배경에는 자본가의 탐욕과 경제논리가 작동하고 있지만, 어쨌든 오지 않은 불확실한 재앙적 미래를 막자고 당장의 손실을 감수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진실이 불편한 게다. 인간이 기후변화에 덜 민감하고 싶어하려는 데에는 그것이 가져다줄 치명적 위험이 즉각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세대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최근 10년간 과학계에서 끊임없이 기후변화를 경고해 왔음에도 실제 지구기온 상승을 이해하려는 일반인은 많지 않다. 바로 이 미래 경고와 현실 인식 간 괴리가 인류를 더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만약 내년 여름이 다소 덜 덥기라도 한다면 호킹을 비롯한 과학계가 모두 ‘양치기 소년’이 된다. 공포는 쉽게 사라지고 당분간은 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온실가스는 더 늘어날 것이지만. 미래의 일이고, 불확실한 예측이고, 심지어 공상 속의 일로 여기려 한다. 내가 사는 동안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이 집단적 이기심과 안일함이 인류종말을 앞당길 수 있다.

떨어지는 도토리에 머리를 맞은 후 하늘이 무너진다고 ‘잘못된 정보’를 확산시킨 탓에 동물친구 모두를 늑대에게 잡아먹히게 한 ‘치킨 리틀’의 우를 범해선 안된다. 하지만 늑대의 위협이 실재함에도 세 차례 거짓말을 했다고 네 번째 경고를 무시한 ‘양치기 소년’ 우화의 결말도 잊어선 안된다. 진짜 위험에 직면했음에도 거짓말로 몰아붙인 마을 주민의 태도는 기후재앙을 앞두고도 애써 외면하는 지금의 인간과도 같다. 지구 평균기온 ‘4℃’ 상승은 인류종말의 온도, ‘死℃’가 될 것이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 심겠다 했다지만, 인류는 어쩌면 지구종말을 1초라도 늦추기 위해 오늘 나무 한 그루 더 심어야 할지 모른다. 변종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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