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협치’로 외교 역량을 높여야 한다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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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4   |  발행일 2018-08-14 제31면   |  수정 2018-09-21
20180814

지난 8월3일부터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남북 외교장관 회담이 불발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ARF에서 남북 외교장관 회담 성사에 강한 의사를 밝히며 다양한 외교채널을 통해 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거절로 회담장에서 상견례하는 정도의 비공식 회동에 그쳤다. 이 짧았던 비공식 회동을 정부에서 ARF 외교적 성과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ARF 기간 중 11개국과 양자 회담을 진행하는 등 전례 없이 활발한 소통을 보인 북한이 유독 한국의 제안만 의도적으로 거절한 것을 두고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것은 아닌가 점검해야 한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실질적인 비핵화 협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인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중재자 때로는 촉진자 역할을 자임한 우리의 입지를 감안할 때, 한국의 제안을 북한이 공개적으로 거절한 것인 만큼 ‘코리아 패싱’도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제적 인맥과 다자 외교에 경험이 많은 강경화 장관이지만 대미·대남 외교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노련한 리용호 외무상을 상대하기에는 경험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 남북 협상, 북미·한중 관계 등 작금의 중차대한 과제를 넘어 한반도 통일에 이르는 대외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자주적 외교와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외교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외교 수장의 탁월한 역량과 그 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한국 외교의 현실과 문제점을 생각해 볼 때, 독일 통일의 경험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외교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대책을 새롭게 찾아볼 것을 제안한다.

분단 시절의 서독 외교를 책임지면서 통일 독일을 위한 대담한 외교를 이끈 주역은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교장관이다. 겐셔 장관은 1974년부터 92년까지 독일의 통일 전과 후를 합쳐 무려 18년이나 장기 외교장관을 맡아 독일 통일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겐셔는 세계질서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혜안을 갖고 동서독의 통일문제를 국제사회에 선제적으로 꾸준히 제시하는 전략으로 당시 통일에 필수적이던 미국과 옛 소련 등 주요 국가의 동의를 얻어내며 통독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목해 볼 것은 겐셔 장관의 능수능란하고 탁월한 역량뿐 아니라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연립정부’라는 독일의 독특한 정치 환경이다. 독일은 2차 대전 이래 ‘연립정부’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연속성과 일관성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며, 설사 정책이 바뀔지라도 그 진폭이 그리 크지 않게 유지되어 왔다. 바로 이러한 ‘연정’의 합의가 겐셔 장관으로 하여금 전문성과 일관된 정치적 신념을 갖고 독일 외교를 승률(勝率)이 높은 외교 게임으로 이끌어가도록 만든 요체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5년마다 바뀌는 정권과 불과 1~2년도 못 되어 장관이 교체되는 현 정치 환경에서는 그 어떤 탁월한 외교력을 갖춘 인물일지라도 더 이상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한국에서 ‘연정’은 체질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이럴수록 최근 정가에서 언급되고 있는 ‘협치’란 관점에서 독일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지혜와 아량이 거듭 요구된다.

민족의 운명과 지상과제인 한반도 문제에 관련하여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는 우리 한국의 국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외교 분야의 정책만이라도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정권의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도록 여야 간에 대대적인 합의를 이뤄내길 바란다. 이렇게 할 수 있을 때라야 주변국의 공조와 함께 대외여건을 성숙시켜 마침내 우리의 숙원 과제인 남북한 통일과 동북아 평화번영을 합목적으로 달성하는 길을 찾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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