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소통과 협력이 필요한 ‘방과 후 학교’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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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4   |  발행일 2018-08-14 제30면   |  수정 2018-09-21
작년 직장인 여성 1만5천명
자녀 초등생되자 회사 관둬
방과후 학교가 대안이지만
교사업무 가중 등 고려해서
지자체와 협업 검토할 필요
20180814
강선우 대통령직속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2018년 8월의 어느날. 낮에는 거대한 한증막같은 날씨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밤에는 초열대야로 잠을 설치고 아침이면 다시 생업 전선으로 뛰어든다. 고단한 일상의 쳇바퀴 속에 직장남 A씨도 있다. 슬링아기백에 아기를 안은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아기는 울음을 그칠 줄 모르고, 기저귀에 실례까지 한다. 그러잖아도 폭염과 누진제 탓에 바짝 날이 서 있는 동료들은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로만 예의(?)를 지킨다. 25년여 전 최민수와 최진실이 주연했던 영화 ‘미스터 맘마’를 2018년에 대입시켜 본 모습이다. 영화 속 최민수는 아기를 데리고 출근해도 직장 동료들이 이해를 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심지어 최진실과도 사랑에 빠지는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러나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에 현직이면 도둑놈)가 낯설지 않은 2018년도 대한민국의 무한경쟁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미국유학 시절 얘기를 하다보면 종종 받는 질문이 어떻게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공부했냐는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믿고 보낼 수 있는 양질의 어린이집이 있었고, 커서는 방과후수업(after school program)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가 아플 때만큼 난감할 때가 없다. 게다가 혼자서 육아를 하고 있는 경우라면 말해 무엇하리. 아이가 입원했을 때는 병원 내에 마련돼 있는 학교가 낮 시간동안 아이를 돌봐줬다. 그리고 퇴원 후에는 학교 소속 물리치료사가 집으로 찾아와 치료를 해 주는 놀라운 시스템을 경험하기도 했다. 국가가 아이를 키우겠다는 철학과 이를 뒷받침해 주는 시스템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1명 밑으로 추락해 지구상 유일한 0점대 국가가 될 것이다. 인구절벽의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저출산’ ‘출산율’이란 말을 ‘저출생’ ‘출생률’로 바꾸어야 한다는 중요한 논의도 일단은 미뤄야 하나 싶을 정도의 응급상황을 맞았다. 저출산의 문제를 우리네 삶의 질 개선의 문제로 뒤집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즉, 국가 주도식 출산율 숫자 높이기가 아닌 제도 및 구조개혁을 통해 개인의 선택이 존중될 수 있는 다각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기쁨보다는 부담이 돼 버렸다. 특히 직장맘들에게 있어 육아란 일(work)과 삶(life)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는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교시간이 빨라지는 초등학교 입학과 맞물려 작년 한 해만 직장여성 1만5천명이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뒀다고 하니 이쯤 되면 ‘출산 휴가’가 아닌 ‘초등학교 입학휴가’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올해 초 저출산 대책의 한 방안으로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 관련 정책’이 언급됐다. 초등학생의 방과 후 수업을 의무적으로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방과 후 수업을 정규수업으로 전환하는 것, 이 정규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 이후는 ‘방과 후 학교(after school program)’로 지자체 등과 협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과 후 학교는 전형적인 탁상공론, 무지의 소산이란 오명을 쓰고 학교현장, 학부모, 그리고 교육단체로부터 강하게 비판 받았다. 초등학교의 빨라진 하교시간 때문에 육아의 부담이 커지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방과 후 학교의 운영은 누가 책임질 것이며, 교사의 행정업무 가중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 질책의 요지였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했다. 방과 후 학교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로 하되, 그것을 선택함에 있어선 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교사들의 행정업무 부담을 덜기 위해 학교라는 장소에서 제공하되 운영과 관리는 지자체와 협업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물론 방과 후 학교가 지속가능한 육아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는 데 유관기관 및 이해관계 당사자 간의 소통과 협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강선우 대통령직속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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