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뮤직톡톡] 나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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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10   |  발행일 2018-08-10 제39면   |  수정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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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벨라폰테의 미국 카네기극장 공연실황 앨범 재킷.

갓 서른이 될 무렵 경북대 의과대학 방사선과 교수 한 분이 내 공연을 보고 하신 말씀이 지금까지도 내게 많은 음악적 성찰을 하게 만든다. 그날 연주에서 딱 한 번의 드럼 솔로 기회가 찾아왔다. 왜 그랬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그날 그 프리타임에 연주를 하지 않고 그냥 침묵으로 일관했다. 몸과 마음으로 박자를 세며 음악을 흘려보내는 것도 연주라 생각했다. 음악이 잠시 멈춘다 해도 우리의 마음속 리듬과 시간의 관성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다. 오히려 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음악에 대한 갈망이 더해질 거라 믿었다. 공연 직후 내 곁에 다가온 그 교수는 내게 “연주 중간 드럼 솔로 부분 4마디에서 왜 아무것도 치지 않고 그냥 흘려보냈느냐” “연주하고 싶을 텐데 어떻게 참았느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이 ‘질타’처럼 전해졌다. 속이 편한 건 아니었다.

약간의 위로와 용기를 얻고자 교수에게 넋두리하듯 내 속맘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아무도 저의 음악엔 관심도 없고 앞으로도 관심 없을 것 같고…. 참, 음악으로 밥 먹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교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한 마디를 쏘아댔다.

“힘들면 음악 하지 마소!”

그리고 그는 나보다 자신이 음악을 더 좋아한다는 취지의 말까지 보탰다. 더 이상 대화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분위기가 금세 얼어버렸다. 이 말을 들으려 시작한 넋두리가 아닌데…. 아무튼 난 부끄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화도 나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정말 뭐라 할 말도 딱히 없었다. 그 말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 내 내면을 맴돌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수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특별한 기술과 지식이 없는 내가 음악을 관두고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단순한 육체노동 정도. 그냥 음악을 그리워하거나 또 한편으로는 음악을 증오하며 사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가? 어떤 장르의 음악이 다가와도 연주해 낼 수 있는 뮤지션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난 손에 잡히지도 않는 고민만 늘어놓은 철부지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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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러워하는 동료 뮤지션이 있다. 그는 풋내기 뮤지션 시절부터 연주하고 받는 푼돈을 아껴 CD를 한 장 두 장 사 모으기 시작해 현재 5천장이 넘는, 그것도 단일 장르의 음반으로만 방을 가득 채울 만큼 보유하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그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 정도의 음반이면 찾기 쉽게 알파벳 순서로 정리해 두기 마련이지만 그 친구는 달랐다. 자신만의 패턴으로 정리했고 놀랍게도 그 많은 음반의 위치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Danny boy’를 듣고 싶다고 하면 각각 다른 뮤지션이 연주한 Danny boy 버전을 10곡 이상을 찾아내 보여준다. 그다음엔 그 음반의 차이를 나름의 안목으로 해석해낼 줄 안다. 가히 음악도서관 사서를 방불케 하는 백과사전적 음악 내공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여온 음악적 자산이 온몸에서 피어나니 좋은 뮤지션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분은 대학원 시절 비교경제발전론 담당 교수다. 그는 경제 강의 중 가끔 한국가요사는 물론 해리 벨라폰테 카네기홀 라이브 실황 앨범에 얽힌 스토리까지 들려주었다. 난 그의 해박한 음악지식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2000년 초 그는 청와대에 계셨다. 너무 바쁜 일정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인 ‘가요무대’를 시청할 시간이 없어 아내에게 한 편도 놓치지 않고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 두라고 부탁했단다. 물론 쉴 때는 그 녹화분을 세심하게 감상하였다. 지금도 그분은 대구역 지하도와 교동시장 등지에서 유통되는 귀한 LP음반을 찾아다닌다. 최근에는 클래식기타를 독학으로 독파했다. 특히 해리 벨라폰테가 카네기홀에서 멋지게 불러 전 세계 팬들의 심금을 울렸고 지금 들어도 감동을 주는 Danny boy를 뮤지션의 자세가 느껴질 정도로 정교하게 연주한다. 음악하는 나를 항상 자극하는 분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의 두 사람은 비전공자이지만 광적으로 음악을 좋아한다. 적어도 나보다 음악을 더 좋아하는 게 맞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왜?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들의 공연에 대한 지적은 프로 연주자를 더 깨어있게 만드는 에너지다. 그들의 음악적 취향은 프로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런 그들이 객석을 지키고 있기에 우리 뮤지션은 더 깊은 음악을 향해 진화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난 그들이 있어 늘 긴장되고, 그래서 항상 기분이 ‘업(UP)’ 된다.

재즈드러머 sorikong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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