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曲기행 .26] 영주 죽계구곡...소백산 국망봉·비로봉이 낳은 계곡…‘한 이름 두 구곡’을 품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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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9 07:41  |  수정 2021-07-06 14:49  |  발행일 2018-08-09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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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지’에 기록된 죽계구곡의 1곡인 취한대 풍경. 소백산에서 발원한 죽계에 설정된 죽계구곡은 순흥지 죽계구곡과 신필하가 설정한 죽계구곡 두 종류가 있다.

영주를 둘러싸고 있는 소백산 자락이 만들어낸 계곡인 죽계(竹溪)에 설정된 구곡이다. 죽계는 소백산 국망봉과 비로봉 사이에서 발원해 영주시 순흥면을 휘감아 돌아 흘러가다 낙동강 상류로 흘러든다. 이 죽계의 상류에 죽계구곡이 있다. 죽계는 특히 고려 후기 근재(謹齋) 안축(1278~1348)이 죽계의 아름다움을 ‘죽계별곡’으로 읊으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신재(愼齋) 주세붕(1495~1554)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죽계 옆에 안향의 사당을 세우고 학사(學舍)를 마련해 1543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건립했다. 그 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은 나라에 사액을 요청, 1550년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사액을 받으면서 명칭이 소수서원으로 바뀌었다.

풍기군수 역임했던 주세붕·이황
최초 경영說 있지만 기록은 없어

지금의 계곡 안내표지판 내용은
순흥부사 신필하가 설정한 구곡
순흥·흥주誌 기록 구곡과 큰 차
지점 다르고 규모도 2㎞에 불과


소수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이기도 하다. 죽계 옆에 있는 소수서원은 이로 인해 조선 선비들의 고향이 되었다. 이런 죽계에 있는 죽계구곡은 언제 어떤 인물이 처음 설정하고 경영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주세붕이 설정했다는 설도 있고, 이황이 설정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와 관련한 자료는 찾을 수 없다. 주세붕이 풍기군수로 있었고, 이황도 풍기군수를 역임하고 소백산을 유람한 사실 등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나 관련 기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해좌(海左) 정범조(1723~1801)가 환갑을 맞아 죽계구곡을 유람한 뒤 그 감흥을 시로 읊었다. 정범조는 풍기군수를 역임했다. ‘휘장 친 수레 멀리서 기다리니/ 문서는 상관하지 않았네/ 함께 환갑을 맞은 객이 되어/ 산을 전혀 유람하지 못했네/ 가을이 되니 소나무 문 깨끗하고/ 스님이 함께하니 구름과 새 한가롭네/ 천천히 돌면서 구곡을 완상하니/ 무이산 사이에 있는 듯하네’ 이 시를 통해 그가 유람한 죽계구곡이 초암사 시내에 설정된 구곡이라는 사실과 무이구곡을 본받은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두 개의 죽계구곡

현재 죽계구곡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되고 있다. 순흥부사 신필하(申弼夏)가 1728년에 설정한 죽계구곡과 ‘순흥지(順興誌)’와 ‘흥주지(興州誌)’에 기록되어 있는 죽계구곡이다.

순흥지에 ‘죽계구곡은 순흥군수 신필하가 일찍이 소백산에 노닐 때, 초암사(草菴寺) 금당반석(金堂盤石) 앞에 죽계제일수석(竹溪第一水石)을 크게 써서 새기니 곧 무이구곡을 모방한 것이다. 처음 반석에 제1곡을 새기고, 시내를 따라 내려가며 끝인 이점(梨店))에 제9곡을 새기니 그 사이가 겨우 5리 정도다. 시내가 길고 굽이가 많은 가운데 가장 기이한 곳을 취한 것이다. 마땅히 새긴 구곡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니, 너무 짧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이구곡은 처음 동구(洞口)에서 거슬러 올라가 원두(源頭)에 이르니, 동구가 제1곡이 되고 원두가 제9곡이 된다. 여기서 이른바 죽계구곡은 그것과 상반된다. 지금의 소견으로는 백운동(白雲洞) 취한대(翠寒臺)를 1곡으로 시작하고, 금성반석(金城盤石)을 2곡으로 삼고, 백자담(栢子潭)을 3곡으로 삼고, 이화동(梨花洞)을 4곡으로 삼고, 목욕담(沐浴潭)을 5곡으로 삼고, 청련동애(靑蓮東崖)를 6곡으로 삼고, 금당반석(金堂盤石)을 8곡으로 삼고, 중봉합류(中峯合流)를 9곡으로 삼는 것이 마땅하니 비로소 여기에 기록해 후인을 기다린다’고 적고 있다.

신필하의 죽계구곡처럼 상류에서 1곡을 시작하는 구곡도 간혹 있기는 하다. 그러나 순흥지 편찬자는 이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구간이 짧다는 생각으로 신필하가 새겨놓은 죽계구곡에 의문을 표시하며 새롭게 죽계구곡을 정했다. 이러한 설정은 흥주지에도 계승되었다.

이황의 후손인 광뢰(廣瀨) 이야순(1755~1831)은 소수서원에서 출발해 이황의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 기록을 따라 소백산을 유람하면서 죽계구곡을 답사한 뒤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소백산에 들어갔는데, 죽계구곡에 굽이를 따라 돌에 새긴 것은 퇴계 선생이 손수 적은 것은 아니고 후인이 잘못 전한 것이다. 그래서 글을 지어 바로잡았다. 비류암(飛流巖)은 선생의 시문이 일찍 미친 곳이나 드러나지 않고 전하지 않는 것이니, 당시의 유록(遊錄)을 질정하여 그 장소를 알아냈다.’ <광뢰집>

신필하가 죽계 곳곳에 ‘1곡’부터 ‘9곡’까지를 돌 위에 새겨놓은 것을 본 이야순은 이황이 써서 새기게 한 것이 아니고 후인이 잘못 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돌 위에 새긴 글자는 이황이나 주세붕이 새긴 것이라는 설이 있었던 것이다. 이야순과 함께 유람했던 송서(松西) 강운(1772~1834)은 ‘유소백기(遊小白記)’에서 주세붕이 새긴 것이라는 설과 이황이 새긴 것이라는 설이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하계(霞溪) 이가순(1768~1844)은 순흥에서 만년을 보내면서 죽계를 따라 소백산을 유람하고 시를 읊으면서 구곡시 ‘소백구곡(小白九曲)’을 지었다. 그는 죽계구곡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황이 유람한 자취를 따라 소백구곡을 설정했다. 이가순의 소백구곡은 신필하의 죽계구곡과 차이가 많다. 아홉 굽이의 지점이 다르고 규모도 훨씬 크다.

순흥지가 제시한 죽계구곡 중 그동안 확인할 수 있었던 굽이는 제1곡 취한대, 제7곡 용추, 제8곡 금당반석, 제9곡 중봉합류다. 나머지 굽이는 그 지점이 확실하지 않아 전문가들이 다만 추정할 뿐이다. 두 죽계구곡은 순서는 다르지만 지점은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안내 표지판은 신필하의 죽계구곡을 안내하고 있다.

◆순흥지 죽계구곡

1곡 취한대는 소수서원 옆 죽계 시냇가에 있는 대(臺)인 취한대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굽이다. 맑은 죽계의 물과 취한대, 소나무 숲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굽이다. 취한대는 1550년 당시 풍기군수이던 이황이 처음으로 터를 닦고 흙을 쌓아 단을 만들어 소나무를 심은 대다. 이 아름다운 대에서 소수서원의 원생들이 시를 지으면서 청운의 꿈을 키우도록 한 것이다. 지금은 정자가 세워져 있다. 지금의 정자 취한대는 1986년에 건립한 것이다.

‘흥주지’에 “백운동(白雲洞)은 순흥부 영귀봉 아래에 있다. 옛날에는 숙수사(宿水寺)가 있었고, 지금은 소수서원이 있는 곳이다. 수석이 매우 빼어나고 동학(洞壑)이 그윽하게 안아서 아름답고 영롱함이 남쪽 고을에서 제일이다. 취한대, 경렴정, 경자바위(敬字石)가 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경렴정은 취한대 건너편 언덕 위에 있다. 소수서원 경내로 들어가는 대문 앞에 있는 정자로, 유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였다.

2곡 금성반석은 순흥향교 옆 죽계에 있는 널따란 바위로 추정하고 있다. 3곡 백자담, 4곡 이화동, 5곡 목욕담, 6곡 청련동애에 이은 7곡 용추폭포는 배점리 주차장에서 2.7㎞ 정도 걸어 오르면 도로 왼쪽 계곡에 나타나는 폭포다. 초암사로 올라가는 길 아래에 있다. 6m 높이의 바위 틈에서 시냇물이 물기둥을 이루며 떨어지고, 그 아래는 폭포수가 만든 소가 있다. 바위 위쪽에 ‘사곡(四曲)’이라는 글씨가 있는데, 신필하의 죽계구곡 제4곡이다.

8곡 금당반석은 초암사에서 국망봉 쪽으로 길을 따라 300m 정도 걸어서 올라가 계곡으로 내려가면 나온다. 널따란 반석 위로 죽계의 물이 흘러가는 굽이다. 금당반석 위에 작은 폭포가 있고, 오른쪽 큰 바위 벽에 신필하가 새긴 ‘죽계일곡’이 있다. 신필하는 이 금당반석을 1곡으로 삼았다.

금당반석에서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이황의 자취가 남아있는 청운대가 있다. 청운대는 이황이 이름을 바꾸어 새로 지은 바위 이름이다. ‘청운대(靑雲臺)’라는 각자가 있는데, 원래 이름은 백운대(白雲臺)였다.

9곡 중봉합류는 금당반석에서 100m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국망봉 서쪽 골짜기에서 내려온 물과 비로봉 동쪽에서 내려온 물이 중봉 아래에서 합류하는 지점이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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