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홀리데이 인 세부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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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6   |  발행일 2018-08-06 제27면   |  수정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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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혁 논설위원

‘렛 미 테이크 유 파 어웨이, 유드 라이크 어 홀리데이~.’ 스콜피온스의 히트곡 ‘홀리데이’를 며칠 동안 흥얼거리면서 먼 바다로 떠날 준비를 했다. 수영복·샌들·선크림·수경·모자, 아쿠아 슈즈도 챙기고…. 가만있자~, 이번 여행의 바다 프로그램은 뭐가 있지? 스킨스쿠버·제트 보트·파라 세일링·아일랜드 호핑·보홀투어에…, 어라? 고래상어와 같이 수영도 할 수 있다고? 괜찮아 보여 기대감이 커졌다. 대구는 5월부터 여름이니 여름이 장장 다섯 달이나 되는 혹서지다. 어찌 태평양을 꿈꾸지 않으리오. 목적지는 태평양에 산재한 수천 개 섬 중 하나인 세부. 무슨 일이든 본게임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더 설레고 짜릿한 법이다. ‘홀리데이’의 노래가사 내용대로 섬으로 떠나는 여름 휴가의 묘미는 ‘파 어웨이’ 그 자체다.

집을 나와 오후 5시30분,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에서 김해공항행 리무진(1시간20분 소요)을 탔다. 김해공항에서 3시간 대기한 끝에 밤 10시 뜨는 세부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저비용항공사의 189인승 중형 항공기의 좌석은 불편했지만 4시간10분 비행쯤이야~, 견딜 만했다. 날개쪽 비상구 좌석이 배당돼 상대적으로 편했다. 필리핀의 7천107개 섬 중 아홉째로 큰 섬 세부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휴양지다. 식당과 수영장 등 곳곳에 ‘모종 부어 놓았다’는 표현이 적확할 정도로 한국인들로 넘쳐났다. 한국인 동족은 입을 다물고 있어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필리핀 스타일로 신축한 돔형 공항청사는 번창하는 세부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었다.

시내 식당가나 공원에 가면 큰 눈이 슬퍼 보이는 필리핀 원주민 소녀가 한국인들을 따라다녔다. 조개껍데기와 화려한 닭 깃털로 만든 장신구들을 들고 와서 “원달러, 원달러”를 외친다. 집요하게 쫓아다니지만 예전에 불쌍해서 사주었다가 혼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무시한다. 봉투에서 달러를 꺼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애들이 우르르 떼로 덤벼들면서 매달려 난감했다. 우리 일행 중 중학생·초등학생 아들 둘과 아내를 동반한 한 아저씨는 “돈 없어!”라고 한국말로 대응했다가 움찔했다. 그 순박해 보이던 소녀가 빈정대는 투로 “뻥 치지 마”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보라카이 여행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세부 여행도 백미는 역시 바다였다.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바다와 섬에서 놀았는데 천국이 따로 없었다. 스노클링 장비를 벗고 수영 실력을 뽐내다가 짠물을 먹었다. 염도가 한국보다 몇 배나 센 것 같았다.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 여행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일행과 정해진 일정을 같이 하므로 편해 보인다. 하지만 수영 등 선호분야에 집중할 수 없는 게 단점이다. 이번에는 가이드와 많은 대화를 나눈 게 기억에 남는다. 목적지로 이동할 때 차량 안에서 미국(48년간)·일본(2년)의 지배를 받은 필리핀의 역사적 배경이나 세부의 현 상황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질문도 했다. 세부에서만 13년째 가이드 노릇을 하고 있다는 그는 큰 키에 건장한 체구를 지녔다. 이전에 보라카이에서도 가이드 노릇을 한동안 했다는 그는 필리핀 정부가 얼마 전 바닷속 산호 보호를 이유로 보라카이를 폐쇄했다고 발표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고 했다. 보라카이에 중국 자본이 들어와 함부로 개발하고 환경문제를 일으키자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폐쇄 조치를 내린 게 숨겨진 진실이라는 것. 돈 많은 중국인들은 요 근래 세부까지 진출해 건물을 짓는 등 난개발을 하는 추세여서 문제가 되고 있다고도 했다. 13년차 현지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은 상식을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1억명의 인구 중 90%가 빈민이고, 부자 5%·중산층 5%인 섬나라 필리핀. 인건비가 싸서 일당이 7천~8천원에 불과하고, 선망의 대상인 교사 월급도 40만원 정도라고 했다. 자신도 집에 3명의 현지 가정부를 두고 있는데 업무 강도에 따라 월급을 26만원·20만원·17만원씩 차등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색다른 문명도 배우고, 깨끗한 바다에서 즐겁게 놀고…. 5일간의 짧은 여름 휴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먼 섬으로 반드시 떠나야 하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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