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투자 구걸, 압박 말고 투자 유도해야…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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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6   |  발행일 2018-08-06 제26면   |  수정 2018-08-06
“대기업에 투자구걸 말라”
靑, 경제부총리에 메시지
국가주의 논란 속 새 화두
국민 위한 정부권한 행사는
정치권력 남용과 구별돼야
[송국건정치칼럼] 투자 구걸, 압박 말고 투자 유도해야…

사전적 의미의 ‘국가주의(Statism)’는 국가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절대적으로 우선시키는 사상원리나 정책이다. 정치학에선 국가를 가장 우월적인 조직체로 인정하고, 국가권력이 경제나 사회정책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조를 일컫는다. 최근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문재인정부를 국가주의라고 연일 비판하는 건 정치학적 의미에서다. 초·중등 교육현장에서의 카페인 음료 판매와 ‘먹방’(시식 방송 프로그램) 규제, 휴게소 음식값 원가 공개 같은 일을 정부의 잘못된 간섭 사례로 꼽았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 마인드 부족이 문재인정부의 가장 큰 취약점이라는 김 위원장의 평소 지적과도 결을 같이한다.

김 위원장은 보수 쇠락의 원인도 국가주의에서 찾는다.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보수는 박정희 성장 신화 속에서 길을 잃었다. 북핵 위협을 내세우면서 국가주의로 박정희 신화를 유지시키려 했지만 지금은 국가권력이 우리를 마음대로 통치할 수 없는 시대”라고 했다. 보수정권이 국가주의에 빠져 있다가 실패했는데, 문재인정부도 국가권력이 사회를 통제해야 한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해 그 길을 뒤따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시각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문재인정부가 출범 직후 적폐청산에 드라이버를 걸자 이를 ‘국가주의’라고 표현하며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던 산업화 시대와 다를 게 없다”는 말을 한 바 있다.

민주당에선 ‘문재인정부 = 국가주의’란 등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동청소년들의 건강을 지키고 적극적인 비만관리 대책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국가주의라는 선동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리 현실을 볼 때 완전 자유시장 논리에만 맡길 수 없고 어느 정도 국가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국정 운영 주체 입장에선 일리 있는 반론이다. 하지만 국가권력이 경제나 사회정책을 통제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제대로 구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하자마자 여러 가지 지시를 직접 내렸다. 1호 지시, 2호 지시… 7호 지시로 불린 것들은 일자리위원회 설치,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같은 국가경영의 기조와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다만 여기에 5·18 기념식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4대강 보 일시 개방 같은 주문이 포함되면서 ‘지시 남용’이란 지적도 나왔다.

청와대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오늘(6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 방문을 앞두고 ‘정부가 재벌에 투자·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를 전달했다고 ‘한겨레’가 보도했다. ‘구걸’이라는 표현은 청와대 관계자의 코멘트 속에 들어 있다. 김 부총리는 ‘현장 소통 간담회’의 일환으로 지난해 말부터 LG·SK·현대자동차·신세계를 방문해 대규모 투자와 고용계획을 전달받고 이를 기재부가 발표해 왔다. 이를 두고 보수진영에선 ‘투자 압박’이라고, 진보진영에선 ‘투자 구걸’이라고 각각 비판한다.

지금은 경영효율이 떨어지는데도 정부의 압박이나 구걸이 있다고 투자를 하거나 일자리를 늘리는 대기업은 없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일자리 대란이 일어났다고 대기업의 애국심에 호소할 수도 없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애로점을 해결해 주고, 그 반대급부로 투자를 유도하는 일이다. 삼성에 앞서 대규모 투자와 고용을 약속한 대기업은 압박이나 구걸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유도에 따른 결정이었다. 국민생활 향상을 위한 정부의 온당한 권한 행사와 정치권력 남용형 국가주의는 구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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