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저출산 대책과 여성의 지위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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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4   |  발행일 2018-08-04 제23면   |  수정 2018-09-21
20180804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얼마 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젊은 주무관이 임신했다면 축하해줄 수 있어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이른바 비혼(非婚) 출산을 용인하고 축하해야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였다. 박 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비혼을 거론한 것은 처음으로 정부가 굉장히 큰 사회적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프랑스의 비혼 출산이 45~50%를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2%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경상도 보수층이 그 말을 들으면 눈살을 찌푸리고 혀를 찰 것이다. “결혼을 안 한 여자가 아이를 낳다니! 더구나 국민의 모범이어야 할 공복(公僕)이 그런 행동을 보인다면 어린 학생들은 무얼 배우겠는가?”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의 88.6%는 동거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으며, 동거 당사자들도 자신들의 동거 사실을 공개하는 경우가 전체의 6.3%에 그친다고 한다. 이런 나라에서 누가 동거해 낳은 자식이 축하받기를 기대하겠는가.

필자의 학과에 출강하는 한 미국인 강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번은 그의 부모가 ‘구존’하는지를 물었더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더니 스스럼없이 ‘여자 친구’하고 같이 산다고 했다. 그는 덧붙여 그렇게 산 지 20년도 넘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가 20년 넘게 동거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또 싱거운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의 동거녀를 보면 어떻게 부르느냐고 물었다. 그는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그 여자의 이름을 부르지 무엇으로 부르겠느냐고 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영자’ 혹은 ‘영자씨’ 정도로 부른다는 것이다. 어머니뻘인 어른을 ‘영자씨’라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마가렛이라는 고모가 있었다. 헨리 8세의 누나였다. 이 고모는 잉글랜드의 공주로 태어나 이웃나라인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4세에게 시집을 가서 스코틀랜드의 국모가 되었다. 그런데 이 왕이 일찍 전사하자 그 이듬해 스스럼없이 짐을 싸서 앵거스 백작에게 재가(再嫁)했다. 그런데 이 백작과도 이혼을 하고 메스번 경이라는 귀족과 다시 결혼식을 올렸다. 더 우스운 일은 첫 남편 제임스 4세와의 사이에 난 손녀 메리(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가 결혼할 때 그 남편이 된 남자가, 두번째 남편 앵거스 백작의 외손자라는 사실이다. 이 이야기를 정리하면 마가렛은 ‘씨 다른’ 손녀와 외손자를 남겼는데 그들이 결혼했다는 말이 된다. 역시 기가 찰 노릇이지만 현재의 영국 여왕도 이 핏줄을 이어받고 있다.

이 두 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은 이들 나라에선 우리가 보기엔 괴이쩍지만 우리보다는 훨씬 높은 여성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그 동거하는 여성은 누구를 만나든 당당하며, 동거한다는 사실로 인해 절대 얼굴 붉히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사정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고, 동거남의 자식들에게도 당당하게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며 그들과도 동등한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

마가렛도 마찬가지다. 왕이 죽어서 다른 데로 두 번이나 시집간 것은 전혀 왕가에 먹칠이 되지 않는다. 여성들은 남편이 죽으면 대략 1년 정도 애도 기간만 지키면 된다. 그리곤 자기 앞의 재산을 다 챙겨서 어디든 시집가면 된다. 경상도 보수층이라면 ‘몇 정지(부엌)를 넘어 다닌 계집’이라고 손가락질할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집간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삶 전체를 시가에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서구에선 시집에 뼈를 묻겠다거나, 사별한 남편을 위해 수절하겠다거나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로 본다.

박 장관의 말은 오늘날 한국의 여성 지위와 저출산을 두고 볼 때 일리 있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이 시집가기 싫어하는 것은 시집살이 때문에 자신의 창의적·개성적 삶이 망가진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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