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취수원 이전보다 ‘정수해서’ 먹으라고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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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3   |  발행일 2018-08-03 제23면   |  수정 2018-08-03
[조정래 칼럼] 취수원 이전보다 ‘정수해서’ 먹으라고

맞는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낙동강물을 정수하고 있고, 그냥 먹지는 못한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최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구 취수원 이전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현장과는 괴리된 탁상 논리이자 대구시민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소리다. 낙동강 물이 깨끗해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말인데, 유독성 물질 유출 사고 등으로 증폭돼 온 대구시민들의 불안에는 오불관언이다. 이에 앞서 과불화화합물 검출 소동이 터졌을 당시 안병옥 환경부 차관은 대구 달성군 매곡정수장을 방문해 ‘안전한’ 대구 수돗물을 시음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환경부 장·차관의 대구 무시가 도를 넘었다.

지방사람을 대면하는 중앙부처 고위 관료들의 ‘전지적 참견 시각’이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시점이다. 지방사람을 무지렁이로 보는 것도 유분수지 가르치고 설교하려는 태도는 안하무인 지경이다. 청와대에 그들의 사퇴 청원이라도 해야 하나. 맞춤하게 한국당 강효상 국회의원은 “환경부 장관은 대구시민께 즉각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에 백번 공감한다. 환경부 장관은 과불화화합물 오염 현장엔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고, 현장에 대신 파견된 차관은 정수장 관계자들과 수돗물 마시기 이벤트나 하고 그쳤으니…. ‘수도권에서 그랬다간 이튿날 바로 옷을 벗었을 것’이라는 비판과 비아냥, 자조가 무성했다. 권력의 메카 대구답게 ‘감히 차관 XXXX이가…’란 돌직구도 날았다.

중앙정부의 혼선이 무엇보다 큰 장애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만도 대구시와 구미시 사이 중재를 거듭 약속한 바 있다. 이 같은 총리의 방침이 환경부 장관에 의해 일거에 뒤집히는 모양새다. 총리와 국무조정을 제치고 환경부가 키를 쥐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어쨌든 환경부 장관의 일도양단의 발언은 대구와 구미 간 갈등의 틈새를 더 벌어지게 했다.

대구 취수원 이전에 대한 환경부 장관의 부정적 논리는 일관성 있게 외눈박이 시각으로 편협하다. 우선 맑은 물 확보 대책, 즉 취수원 이전 문제를 수질(水質)로만 접근하는 건 과거 국토부 소관이던 수량(水量) 관리 측면을 배제시킨 협량한 치수(治水)정책이다. 물 관리 일원화로 환경부가 물 나눔 등 국토부의 수량관리 업무까지 통합했으면 취수원의 균형 분배와 조정 문제에도 전문성을 발휘해야 마땅하다. 부산의 경우 진주 남강댐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환경부가 나서서 중재를 해야 한다. 울산도 청도 운문댐 물을 분할·활용할 수 있도록 거간이 필요하다. 수자원의 효율적·균형적 분배는 환경부가 국토부로부터 흡수한 업무인데, 이를 등한시한다면 그건 직무유기이자 무능의 소산이다.

지역 간에 물을 나누고 공동으로 활용토록 하는 수량관리는 수질 개선에 우선한다. 수질 관리가 덜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정책의 화급성 측면에서 그러하다는 말이다. 낙동강 수계 전체의 수질 개선만 고집하는 건 취수원 이전을 포함한 맑고 안전한 물 확보 대책에는 손을 놓고 있으라는 말과 다름없어 참으로 몰상식하고 모순적이며 불합리하다. ‘낙동강 수질 개선’과 ‘폐수 무방류시스템 구축’은 국가가 추진해야 할 장기적이고 고유한 업무이지만 곧바로 취수원 이전을 대신·대체할 사업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병행돼야 할 사업이다. 국토부 업무까지 품은 거대 환경부라면 수량이 가장 풍부한 남한강 물도 부족한 낙동강 수계로 보내는 정책구상까지 할 수 있어야 ‘도로 반쪽 환경부’란 비판을 듣지 않을 터이다.

대구 취수원 이전의 필요성은 새삼 재론하지 않아도 널리 전국적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그럼에도 2009년부터 시작된 대구 취수원 이전 논의가 지금껏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지역 간 갈등을 방치·방임해 온 중앙정부의 탓이 크다. 대구시와 구미시가 팽팽하게 이견을 보이는 핵심 쟁점들은 이미 공개됐고, 민원과 갈등 해결 의지와 추진력만 있으면 협의에 이르지 못할 치명적인 걸림돌이 있을 수 없다. ‘정수해서 먹어라’는 환경부 장관의 답변은 취수원 주무 부처 수장이길 포기한 무책임한 언사다. 자진 사퇴하라는 소리, 백번 들어도 싸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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