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명복을 빈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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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1   |  발행일 2018-08-01 제27면   |  수정 2018-08-01
[박재일 칼럼] 명복을 빈다

지난주 좋아하는 후배 기자가 서울서 왔다. 무슨 용무냐고 했더니 유성환 전 의원 문상 때문이라고 했다. 오랜 인연이 있고, 본인 주례까지 섰다고 했다.

‘대구의 정치인 유성환’은 통일 국시(國是) 발언으로 유명하다. 전두환 정권 시절 ‘반공(反共)이 국시가 아니라 통일이 국시가 돼야 한다’며 화두(話頭)를 던졌다. 반공을 명분으로 반대파를 억압하던 시절이다. 그는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통일 국시론에 온전히 동의하기도 어렵다. 긴 설명이 필요하지만, 다른 혈액형을 합친다고 신체가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앞서 그가 처음 당선됐던 1985년 그해, 대구 중앙로에는 인파가 쏟아졌다. 후배 기자는 명절 때면 종종 과일을 보냈다고 한다. 조문은 못했지만 지면으로 명복을 빈다. 향년 89세다.

유성환이 타계하기 하루 전날, 진보당의 노회찬 의원이 투신 자살했다는 뉴스가 떴다. 모두들 놀랐다. 그는 한국정치에서 한번도 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평등적 가치에 무게를 둔 진보 좌파 정치인이다. 촌철살인의 명언으로 유명했다. ‘그을음이 많은 불판을 갈아야 하듯 50년 된 정치의 불판을 교체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기억된다. 호불호의 농도가 다를망정, 그를 크게 싫어한다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다. 유서에서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고 했지만, 그래도 자살은 동의하기 어렵다. 그는 좀 더 투쟁적이어야 했다. 정치는 순교가 아니다. 물론 그가 몸담은 정의당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정치는 다소 허접했을 것이다. 명복을 빈다.

노회찬이 자살한 그날, 전후(戰後) 최대 작가로 불리는 최인훈이 세상을 떴다. 84세였다. 휴전협정이 체결된지 불과 7년 만인 1960년, 그러니까 이 땅에 이데올로기 투쟁의 상흔이 여전하던 그때, 그는 소설 ‘광장’을 발표했다. ‘남과 북’ 집단 이념에 억눌린 젊은 인텔리 이명준을 그렸다. 이명준은 중립국으로 가던 중 바다에 몸을 던진다. 최인훈은 북한 회령에서 태어나 원산을 거쳐 전란 중에 남쪽으로 왔다. 지금이야 좀 시시한 주제가 됐을지언정 집단의 ‘광장’과 개인의 ‘밀실’ 간 부조화는 최인훈의 화두였다. 1994년 발표한 자전소설 ‘화두’를 통해 그는 고민을 총정리했다. 그의 타계소식은 근 20년간 책장에 꽂혀만 있던 ‘화두’를 꺼내들게 했다. 명복을 빈다.

우리는 여전히 대치 구도에 산다. 태극기 부대의 전위대였던 KBS 아나운서 출신 정미홍(60)도 지난주 세상을 떴다. 그는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부정했던 인물이다. 멀쩡한 대통령이 집단 선동과 불법에 의해 끌려 내려왔다는 것. 따라서 대통령 파면은 원천 무효이고, 엄격하게 말하면 법률상 대통령은 아직도 박근혜라고 주장했다. 한때 세월호 천막이 국민 스트레스를 높인다고도 했다. 막말이란 비판도 나왔고, 그의 전 직장 동료들은 KBS 아나운서 이력을 쓰지 말라고도 했다. 그의 죽음을 조롱하는 이들마저 있다. 태극기 부대에 다 동의하기는 어려워도 그 속에는 격차의 시대를 산 응어리가 있다. 틀린 말도 틀렸다고 예단해 못 한다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미국인 남편은 정미홍이 희귀병인 루프스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결혼했다고 한다. 명복을 빈다.

오래전 1990년대 초반에 황적준 박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부검의였다. 박종철은 ‘탁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정치살인 피해자다. 지난 1월 스쳐 지나갔던 서울 신림동에서 ‘박종철 거리’를 보았다. 고문으로 죽은 그는 다시 살아 남아 있다. 황적준은 박종철의 몸이 정말 튼실하고 아름다웠다며 아깝다고 했다. 그 박종철의 부친(박정기·89)이 며칠전 별세했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는 할 말이 없데이’란 말로 아들을 뺏긴 회한을 남긴 인물이다. 31년 뒤의 검찰총장, 경찰청장, 청와대 민정수석이 빈소를 조문했다. 위로가 됐을까. 명복을 빈다.

무더위가 끝을 모른다. 그 속에서도 하나 하나 떠난다. 다들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 용광로를 지핀 이들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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