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영화인들 노회찬 의원을 애도하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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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7   |  발행일 2018-07-27 제43면   |  수정 2018-10-01
“자연인으로 참 좋은, 영화를 사랑한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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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노회찬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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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이 카메오로 출연했던 영화 ‘달밤체조 2015’의 스틸컷. 왼쪽이 노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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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축사하는 배우 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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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비보였다. SNS는 노 의원을 애도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 가운데 영화인들도 있다. 노 의원은 생전에 ‘탐욕의 제국’ ‘나, 다니엘 블레이크’ ‘60만번의 트라이’ 같은 영화들이 개봉 당시 GV(관객과의 대화) 초청 인사로 참석해 영화의 흥행을 거드는 일이 잦았다. 단순히 시사회에 참석해 몇 마디 보태던 정치인들과는 달랐다. 그와 이런저런 인연을 맺었던 영화인들 가운데 좀 더 특별한 인연을 가진 이들이 애도하는 목소리를 들어보자.

‘낮은 목소리’ 3부작과 ‘화차’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은 노 의원의 비보가 전해진 그날 오전 자신의 SNS에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며 “오래전 총선을 앞두고 책을 만들기 위해 당신과 했던 그 인터뷰의 시간을 저는 지금도 가끔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날이면 잊지 않고 보내주시던 꽃도”라며 노 의원의 명복을 빌었다. 변 감독은 한때 노 의원과 같은 정당에서 당원으로 활동했다. 2009년 ‘삼성 X파일’과 관련해 기소된 노 의원의 구명 운동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2010년 노 의원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앞두고 나온 ‘진보의 재탄생’이란 대담집에서 노 의원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다이빙벨’ ‘김광석’의 감독이자 고발뉴스 기자이기도 한 이상호는 노회찬 의원의 안타까운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며 애통해했다. 이 기자는 이날 자신의 SNS에 ‘삼성 X파일’ 공개 무렵의 일화를 회상하며 “당시 삼성이 금력으로 대선후보를 포함한 정치인들을 매수하고 검찰 간부들을 길들이는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천신만고 끝에 입수했다”면서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충격적인 내용이었기에 저는 이 테이프를 ‘삼성 X파일’이라 명명하고, 보도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 직감했다”고 회고했다.


‘화차’ 변영주 감독
“비보 들은 후 눈물이 멈추지 않아
여성의 날엔 잊지않고 꽃 보내줘”

‘다이빙벨’이상호 감독
삼성 X파일 공개 무렵 일화 회상
“의원직 상실 등 고통 죄송한 마음”

제작자 김어준
“새로운 유형 진보정치인에 환호
후원금 걱정없는 정치세상 오길”

영화배우 박중훈
“노의원 권유해 SNS로 대중과 소통
부드럽고 소탈, 겸양을 갖춘 지식인”



이어 보도를 반대하는 수뇌부를 상대로 10개월을 투쟁한 끝에 보도에 성공했지만 뇌물을 받은 검찰 간부들의 명단을 실명으로 보도하는 데는 실패했다. 정치권이 모두 삼성 눈치를 보고 있던 그 시절, 유일하게 먼저 연락을 해온 국회의원이 노 의원이었다고 했다. 그는 “삼성 X파일과 뇌물 검사 명단을 넘겼다. 노 의원은 망설임 없이 명단을 공개했다”며 “(노 의원은) 이내 검사들이 제기한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됨과 동시에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의원은 이후 3년 이상을 정치 낭인으로 떠돌며, 물적으로 심적으로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것은 바로 그 낭인 시절 생활고와 무관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저로서는 고인에 대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책임과 함께 죄송한 마음을 느낀다”고 썼다.

‘더 플랜’ ‘저수지 게임’ ‘그날, 바다’의 제작자이자 딴지일보 총수이기도 한 김어준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회찬 의원을 애도했다. 24일 자신이 진행하는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노 의원을 추모하는 방송을 한 것이다. 노 의원이 생전 노래를 부른 음성을 오프닝으로 틀었다. 노 의원이 고등학교 시절 직접 작곡한 노래란다. “어제 하루 종일 많은 분들이 허망했을 것 같다”고 한 김어준은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노 의원이 최근 1년간 유일하게 고정 출연한 방송이라며 “제가 기억하는 자연인 노회찬을 공유하고 애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치적 비유를 (노 의원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분은 지금도 없다”고 한 김어준은 “새로운 유형의 진보정치인의 등장이었다. 많은 분들이 환호했다. 이분을 대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다”며 “정치를 떠나 자연인으로 참 좋은 분이었다. 정치인의 죽음이 아닌, 친구가 갑자기 떠난 것 같은 상실감이 많은 분들에게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어준은 또 “이런 분들이 후원금 걱정 없이 정치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울 것 같다. (노 의원이 출연한) 코너에서 했던 몇 가지 하이라이트를 준비했다”며 노 의원이 생전에 방송에서 했던 촌철살인의 발언들을 전했다.

배우 박중훈은 노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길에 자신의 SNS에 “견디기 힘들고 슬프다”며 노 의원이 “정말 좋은 사람, 존경스러운 분이었다. 부드럽고 소탈하고 겸양을 갖춘 지식인이자 신념이 강한 정의파”라고 애도했다. 박중훈은 2004년 이금희 전 KBS 아나운서를 통해 노 의원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후 서로를 격려하며 지난 14년 동안 선후배의 정을 쌓아왔던 그는 2008년 노 의원이 펴낸 ‘나를 기소하라’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기도 했고, 같은 해 18대 총선에 출마한 노 의원의 선거운동을 직접 돕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다. 그는 SNS로 활발하게 대중과 소통하는 대표적인 문화예술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데, 그가 2010년대 초반 트위터를 개설하도록 권유한 이가 바로 노 의원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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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이 카메오로 출연했던 영화 ‘달밤체조 2015’의 포스터.

지난 3월 극장이 아닌 온라인에서 개봉한 ‘달밤체조 2015’에는 노회찬 의원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제목에도 쓰인 2015년은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방해하고 세월호 참사로 악화된 여론을 뒤집기 위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해다. 영화는 그때를 사는 세 인물의 사랑 이야기를 가운데 두고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을 비판한다. 언론에 대한 비판도 담았다. 영화 속에서 국밥집 손님으로 나오는 노 의원은 “삼성이 망하면 우리나라 망한다. 노회찬 금마 빨갱이 아니가”라며 자신의 실명을 거론하며 ‘셀프 디스’ 한다.

노 의원의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26일 오전까지 2만2천여 명의 시민이 폭염을 마다않고 조문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한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분향소를 찾는 발길도 끊이질 않는다. 이들의 마음은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잃어선 안 되는 이를 잃어버렸다는 안타까움.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기형도). 나도 별수 없이 그들과 같은 마음이다. 무덥고 슬픈 나날이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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