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한나·아이 엠 러브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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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7   |  발행일 2018-07-27 제42면   |  수정 2018-10-01
하나 그리고 둘

한나
생의 벼랑끝, 풀리지 않는 일상의 매듭


20180727

‘한나’(감독 안드레아 팔라오로)는 상업 영화는 물론이고 어떤 면에서 예술 영화들도 거의 시도하지 않았던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많은 영화들이 인물의 일상을 지루할 만큼 충실히 따라가면서 관객들을 그 인물의 상황에 몰입시키거나 감정에 이입시키도록 만들려는 의도를 드러내왔지만, 사실 그 과잉된 트래킹 샷 혹은 롱 테이크만큼의 성취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한나’에서 보여주는 여주인공의 일상은 한 장면 한 장면의 기능이 명확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능에 포함된 ‘불친절함’ 때문에 관객들은 능동적으로 영화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팩트들 때문에 수많은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오르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생의 벼랑에 있는 한나에게 집중하고 손 내밀어 보는 것, 그것이 ‘한나’를 읽는 매뉴얼이다.


일상 따라가며 담담히 관찰, 먹먹한 외로움 메워져
절망 속 고독한 여성…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한나’(샬롯 램플링)는 남편이 수감되자 홀로 남겨진다. 집을 떠날 때는 둘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혼자다. 그녀는 혼자 개를 돌보고, 씻고 잠을 잔다. 그녀의 먹먹한 외로움이 화면에 부러 비워둔 공간을 통해 전달된다. 가사 도우미 일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꽃을 손질하고, 수영을 하고, 면회를 다니는 일 말고도 그녀의 하루는 가족이나 이웃과의 크고 작은 사건들로 메워져 가지만 카메라는 늘 담담하게 그녀를 관찰하고, 주위는 대사나 음악이 아닌 공간과 사물의 건조한 소리로 채워져 있다. 그 이미지와 사운드의 적막감, 차가움이야말로 한나의 심리를 정확히 드러내는 방식이다.

아들과의 사이도 좋지 않은 한나가 어떻게든 삶을 버텨 나가기 위해 선택한 것은 연극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연극 수업을 받고 있는 한나를 클로즈업한다. 그녀는 괴성을 내며 자기 안의 것을 끄집어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고,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다른 연습생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그녀의 공간까지 잠식해 온다.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연극 수업에 더 애착을 느끼게 되고, 연기를 통해 어느 정도 자신의 상황과 고통을 잊어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남편의 면회에서 모든 것이 잘 되고 있고, 잘 될 거라고 거짓말을 할 때, 한나는 수업의 효과를 톡톡히 본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가 증명하는 것처럼 그것은 통렬한 현실을 자각하는 짧은 순간 다시 무너질지 모르는 공든 탑이다.

대신 안드레아 팔라오로 감독은 한나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그녀가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집의 소년을 개입시킨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한나가 가장 힘들 때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누워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이어, 소년이 한나의 쪼글쪼글한 손가락을 만지는 신이 이어진다. 소년은 영화에서 한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단 한 사람이다. 영화의 3분의 2 지점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위로는 관객들을 더욱 강렬하게 한나의 삶으로 끌어들인다. 절제된 영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한나와 세상의 소통을 바랐던 감독의 의도가 가장 확실하게 엿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샬롯 램플링’은 아득한 절망 속에서 나름대로 분투하는 한 고독한 여성은 물론이요, 처음 연기를 배우는 아마추어 연기자의 모습까지 훌륭하게 연기해냈다. 칠순이 넘은 여배우의 아름다움이란 샬롯 램플링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애환이 담긴 표정과 기품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녀가 풀리지 않는 일상의 매듭 속에 있는 한나로 분한 것은 감독과 관객 모두에게 축복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5분)


아이 엠 러브
뜨거운 여름날, 금기된 사랑에 빠지다


20180727

올 상반기 다양성 영화 차트를 뜨겁게 달궜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2009년작까지도 소환해냈다. 마찬가지로 뜨거운 여름날을 배경으로 한 사랑이야기지만 금기된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감정을 묘사하는 과감하고 급진적인 스타일이 눈에 띈다.

이탈리아의 상류층 재벌과 결혼한 러시아 출신의 ‘엠마’(틸다 스윈튼)는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에도아도 가브리엘리니)를 만나면서 그동안 자신을 죄고 있던 사회적 올무에 갑갑함을 느낀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교양 있는 사람들과 파티를 하며 살아왔던 그녀는 이제 안토니오와 뜨거운 태양 아래 사랑을 나누고, 헐렁한 옷을 입으며 머리카락을 잘라 버린다. 그러나 그녀가 본래 자신의 모습과 이름을 찾기 위해 껍질을 깨고 나가는 행위에는 끔찍한 대가가 따른다. 영화의 카타르시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끝까지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데서 폭발한다.


상류층 재벌과 결혼한 엠마, 아들의 친구와 만남
자신의 모습과 이름 찾기위한 과정 속 끔찍한 대가



후반부 등장인물 중 여성들의 모습을 차례로 비춰주는 신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하나의 성으로 묶여 있었지만 이제 그들을 구속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엠마는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영웅적 인물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비범한 음악과 감각적 촬영, 비관습적인 편집을 통해 자유와 사랑에 관한 멋진 이야기를 더욱 세련되게 세공해냈다.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로부터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장르: 멜로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19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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