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누가 노회찬을 죽였는가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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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7   |  발행일 2018-07-27 제23면   |  수정 2018-07-27
[조정래 칼럼] 누가 노회찬을 죽였는가

아니겠지. 설마. 한동안 믿기지 않았다. 노트북 모니터에 뜬 ‘노회찬 투신’이란 자막을 대하고도…. 차라리 가짜뉴스이길 바랐다. 정신을 차리고 관련 뉴스를 검색하고 정독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설움이 복받쳐 흘러내리는 눈물을 수습하기도 싫었다. 노무현 서거 이후 정치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조의를 표하다가 분노가 치밀긴 처음이다. 우리는 ‘개혁의 아이콘’을 잃었고, 촌철살인을 잃었다.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황망하다. 누가 무엇이 노회찬을 죽음으로 몰고 갔나. 원망스럽다. 거대 권력 앞에서도 한 치의 두려움이 없었는데 뭐가 그렇게 두려웠나. 여야, 보혁을 막론하고 모두 비보를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한국 정치의 비극’. 한국당 대변인은 노 의원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공식 논평했다. 한국 정치의 후진적이고 고비용적인 정치구조가 그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다는 말이다. 비극은 되풀이돼선 큰일인데, 우리는 아직도 노무현의 비극적 결말을 교훈 삼지 못하고 있다. 제2·3의 노회찬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바로잡혀야 한다. 경제력 있는 소수 부유한 계층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한 정치, 정경유착을 조장하는 ‘금권정치’의 뿌리는 너무나 깊고 우리 사회 전체에 그늘을 드리운다. 만연한 부패도 그 뿌리와 맞닿아 있다. 노회찬의 참담한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러나 이 같은 정치 제도·구조적 결함을 넘어선 곳에서도 찾아져야 한다.

극단적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쉽게 눈에 뜨이지 않는 독기(毒氣)다. 무색무취하지만 노무현과 노회찬을 벼랑으로 등 떠민 건 집단 내부의 이지메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유서는 비장하지만 폭력의 냄새를 내장하고 있다. 스스로를 용납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하지만 개인적 선택이 집단 무의식 수준의 정신적·심리적 강요에 의해 부추겨진다는 사실에 불편하지만 우리가 대면해야 할 진실이 있다. 소설 ‘주홍글씨’에서 여주인공 헤스터와 간통한 목사 딤즈데일이 양심의 가책으로 말라가며 스스로 가슴속에 간통을 뜻하는 머리글자인 주홍글씨 ‘A(adultery)’를 새겨넣는다. 그 간통보다 더한 죄는 딤즈데일로 하여금 그것을 풀어헤치게 하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한, 죄지은 자의 마음을 야금야금 갉아먹은 남편 칠링워스의 죄, 바로 마음을 범접한 죄다.

자살의 책임이 개인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듯 노회찬의 자살은 이렇게 강요됐다는 점에서 사회적 타살이 분명하다. 사회적 타살의 기저에는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가 똬리를 틀고 있고, 타인의 죽음에 함께 아파하지 못하는 유체 이탈적 불감증이 깔려 있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논란은 돌이켜 볼수록 부끄럽다. 자살도 맞고, 타살도 맞는데 이러쿵저러쿵 억지와 궤변을 늘어놓아 봐야 억지일 뿐. 죽음조차 진영논리로 다르게 재단돼야 하는지 억하심정을 가눌 길 없다. 자신의 잘못을 덮거나 전가하기 위해 지하의 노무현을 소환하는 찌질한 보수들은 죽음에 대한 예의를 모른다. 사자에 대한 모독이 바로 자기의 인격을 살해하는 행위라는 건 더더욱 모른다.

죽음에 대한 경시가 이처럼 인간의 경지를 넘었는데 더 그악하고 무서운 것은 죽음에 대한 무시다. 세월호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 박근혜의 결단을 예사로 입에 올리며 대속(代贖)을 꿈꾸는 보수들이 넘쳐난다. 노무현이 죽음으로써 부활시킨 폐족(廢族)들의 영화가 뭐 그리 따라 할 만하다고…. 죽음으로라도 지켜야 할 만한 보수의 도덕과 명예가 있기라도 한가. 반문이 필요한 건 진보도 다르지 않다.

생명을 질식시키는 교조적 정의는 정의롭지 못하다. 진짜 부패한 사람들, 여의도를 활보하고 다니는 부패 백화점들은 부패에 대한 비난도 잘 견뎌낸다. 도덕적 염결성의 포로였던 노회찬은 우리의 위선과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갔다. 우리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자격도 없이 돌을 던진 사디스트인 우리가 순전한 죄인이다. 부질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노무현과는 달리 그는 정치의 현장이 아니라 서민들의 삶 속에 수시로 소환되며 추억되리라는 전망이다. 미안하다, 노회찬. 그곳에서나마 평안하시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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