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정전과 종전 사이 누가 튤립을 꺾으려는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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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6   |  발행일 2018-07-26 제31면   |  수정 2018-07-26
[영남타워] 정전과 종전 사이 누가 튤립을 꺾으려는가
박진관 뉴미디어 부장

‘가랑잎이 휘날리는~’으로 시작하는 ‘전선야곡’은 6·25전쟁이 낳은 명곡이다. 영화 ‘고지전’의 메인 테마이기도 한 이 가요는 영화 속에서 리메이크돼 심금을 울렸다. 소년병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애잔하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고지전’은 정전협정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남과 북이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벌였던 극한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그렸다. 2년여간 지지부진한 정전협상 기간 전장에선 남과 북의 수십만 청춘들이 산화했다.

내일(27일)은 6·25전쟁 정전협정 65주년이다.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선 유엔군사령관 마크 클라크, 북한 대표 김일성, 중공 인민지원군사령관 펑더화이 등이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전쟁 당사국이었지만 정전협정엔 서명하지 않았다. 이승만이 중공군 철수, 북한의 무장해제, 유엔 감시하 총선거 등을 내세우며 휴전반대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최전선의 장병들은 정전을 환호했지만, 이승만은 전쟁이 끝나도 북진통일을 고집하며 권력에 집착하다 몰락했다. 스스로의 역량도 없이 북벌을 주장했던 조선의 친명 사대주의자들처럼 이승만은 그저 미국에만 기댔다.

정전협정 이후 그간 남과 북은 죽기살기로 체제경쟁에 나섰다. 전쟁터는 따로 없었지만, 갈라진 민족 개개인의 삶은 전쟁과도 같았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한반도만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남북·북미정상회담으로 종전선언이 가시화되고 있다. 남북이 합의한 4·27판문점 선언에 따르면 연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도록 돼 있다. 북미회담에서도 이를 확인했다. 내일 북한에 있는 미군 유해(55구) 송환이 이뤄지면 오는 9월 유엔총회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 미중 정상이 종전선언에 서명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최근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의 말처럼 26일 현재 한반도는 “240일간 봄에 핀 튤립 같은 수준”의 데탕트를 지속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대북·대남확성기 철거, 남북통신선 복구, 한미연합훈련 연기, DMZ내 GP병력과 장비 시범 철수, JSA비무장화 등이 완료됐거나 진행되고 있으며 지난 24일엔 북한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작업이 시작됐다. 스포츠에선 탁구단일팀, 통일농구경기 등이 결실을 거뒀다. 남북철도 및 도로잇기, 산림녹화 등 산업·경제 차원과 강제징용 조선인 희생자 유골 송환, 이산가족 상봉 등 민간 차원의 사업도 착착 추진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럴 때 튤립을 꺾으려는 세력들이 있다. 이들은 1973년 북베트남과 미국의 평화협정을 예로 들며 남북미 간 평화협정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남북과 45년전 베트남상황을 단순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미국은 1965년부터 73년까지 베트남 전쟁 기간 지금 돈으로 수십조달러를 썼으며, 한번도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또 미국내 반전운동으로 정권마저 위태로워져 남베트남을 포기할 정도까지 이른 반면 북베트남은 강한 전쟁의지가 있었다.

현재 남한은 과거 남베트남과 달리 북한보다 40배 이상의 경제적 우위에 있으며, 핵무기 없이 전쟁을 치를 경우 첨단무기만으로 북을 압도할 수 있다. 또한 남한은 남베트남보다 부패하지 않았고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다. 미국 역시 경제군사적 이유 등으로 남한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종전협상에 미군철수 조건은 없다. 과거 베트남과 현재 한반도상황을 비교하는 건 수구정권의 연장을 꾀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탐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경제군사적으로 남한에 절대 열세인 것을 깨닫고 핵포기 대신 체제유지 수단으로 종전협상을 원하는 것이다.

정화수 떠놓고서 아들의 무운장구를 비는 군대 보낸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전쟁과 대결 대신 종전과 평화를 선택하라. 그게 이 시대의 소명이다.
박진관 뉴미디어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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