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김병준, 보수의 ‘求道者’될 수 있을까

  • 송국건
  • |
  • 입력 2018-07-23   |  발행일 2018-07-23 제30면   |  수정 2018-07-23
野 비대위원장된 盧 조언자
이념과 노선 포로 안되면서
오른쪽 날개 치료책무 맡아
절실하면서 현실적 과제는
박정희 극복과 보수대통합
[송국건정치칼럼] 김병준, 보수의 ‘求道者’될 수 있을까

“보수는 박정희 성장신화 속에서 길을 잃었어요. 시대가 바뀌었으면 새로운 버전을 가져야 하는데, 과거 버전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갖고 있었죠. 반대의견이 나오면 좌파 빨갱이라고 하고, 북핵 위협을 내세우면서 국가주의로 ‘박정희 신화’를 유지시키려 했죠. 지금은 국가권력이 우리를 마음대로 통치할 수 없어요.” 올 초에 필자가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을 인터뷰하면서 ‘보수의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느냐’고 물었을 때 들은 대답이다. 그 시점은 그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로서, ‘대경선진화포럼’ 초대 회장을 맡은 직후였다. 이 포럼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대구·경북 출향인사 80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한다. 그 역시 고령이 고향으로, 대구에서 초·중·고와 대학(영남대 정치학과)을 다녔다.

김병준은 지방자치·지방분권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국가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까지 삼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국정운영 과정에선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두루 역임했다. 그럼에도 ‘정치권 친노’와는 거리를 뒀다. 친노는 이념과 노선에 사로잡혀 시장 마인드가 부족하고 국민을 편가른다고 봤다. 이런 성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국면에서 그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깜짝 지명하는 명분이 됐다. 그 명분은 이번에 한국당이 김병준 비대위체제를 출범시키는 동력도 됐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마찬가지로 이념과 노선을 넘나드는, 혹은 그걸 하위개념으로 던져버리는 ‘실용정치’의 틀을 만드는 새로운 리더십 모델일 수도 있다.

‘박근혜정부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뭐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김병준의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리더십 욕구를 읽을 수 있었다. “참 가슴 아픈 이야기인데, 본질적으로 이야기하라면 역사의 흐름을 잘못 읽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박정희 대통령 신화가 있었지 않습니까. 민족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분인데, 국가주도의 산업화를 이룩했고 우리 사회가 엄청나게 변했죠. 그런데 그 이후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부터 김병준은 연구인이나 평가자가 아닌 ‘실행자’다. 그가 평가자 시절에 꼬집은 ‘박정희 성장 신화, 역사 속에서 길을 잃은 보수’의 길을 찾고 닦아야 한다. 이념과 노선에 사로잡혀선 안 되는, 그러면서도 양 날개로 날아야 하는 민주주의의 오른쪽 날개를 치료해서 새가 제대로 날게 할 책무가 주어졌다. 그가 원한 일이다. 약육강식 생태계에 익숙한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치판에서 새 길을 내는 건 어렵다. 연필과 자로만 설계도를 그리다가 잠시 정책 컨트롤 타워에만 있었던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김종인 비대위’처럼 선거가 코앞에 있어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친문’처럼 김종인이 칼을 휘두를 수 있도록 든든하게 자리를 펴주는 당내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김병준 개인기에 달려 있다.

너무 많은 길을 그려볼 필요는 없다. 현실적으로 딱 한 갈래 길만 그려서 가면 된다. 김병준이 시사했던 보수의 ‘박정희 극복-박근혜 고별’이다. 이를 좌표로 삼아 김병준의 주특기인 정책개발이든, 인적청산이든, 제도개선이든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세우면 떠난 민심이 한번쯤 뒤돌아보지 않을까. 그러면 한국당에서 나와 바른미래당으로 가 있는 보수정치인들이 함께 모여 새 깃발을 올려보자며 손을 내밀지 않을까. 현실적으로도 그걸 완성하는 게 가장 큰 성과다. 그러면 진보의 김종인과 견줄 보수의 구도자(求道者)가 될 수 있다. 김병준이 칠 텐트의 색깔과 크기는 어떨까.

서울취재본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