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삼행시에 담은 마음

  • 최소영
  • |
  • 입력 2018-07-23 07:53  |  수정 2018-07-23 07:53  |  발행일 2018-07-23 제18면
삼행시로 마음 표현하면 부모-자식간 사랑 더 깊어져
무대서 시낭송…아이들 자존감 쑥쑥
학생이 학부모와 삼행시 적는 행사
짧은 시에 감사·존경·따뜻함 묻어나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삼행시에 담은 마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낮은 톤으로 윤동주의 ‘서시’를 또박또박 낭송하는 학생을 유난히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학생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분은 일찌감치 오셔서 자리에 앉아 손주의 시낭송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얼굴에 사랑이 꿀물처럼 뚝뚝 흘러내립니다. 발표를 마치고 할아버지 옆에 와서 손을 잡고 나머지 행사를 지켜보는 조손의 모습은 정겨운 흑백사진 한 장입니다.

매월 좋은 시 읽기 활동 중에서 감동적인 시를 선택해 낭송하는 대회를 열고, 우수작을 선보였습니다. 잔잔한 음악과 더불어 울려 퍼지는 시에 아이들의 소란도 서서히 잦아들고, 차분한 기운이 온 강당에 고요한 파문이 되어 퍼집니다.

학부모회 연계사업으로 하는 학부모독서동아리 회원도 참가했는데 모녀가 손을 맞잡고 온기 가득한 시선을 주고받으며 시낭송을 하는 것도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7080시절의 교복으로 갈아입은 학부모는 학생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고, 내외가 자작시를 낭송함으로써 건강하고 따스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시낭송은 울림이 되어 아이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심어주었고 소란스럽던 아이들도 차분히 가라앉았습니다.

즉석에서 시낭송을 하는 학생 중 한 명은 평상시에 무척 조용했는데, 애송시를 암송해 우리를 모두 놀라게 했고,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자존감이 쑥쑥 자랐을 것 같았습니다.

“너 정말 대단했어. 멋졌어.”

그 한마디에 아직도 붉게 상기된 아이의 얼굴빛에서 용기와 모험이 여진처럼 전해졌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따스함을 심어주기 위한 이 행사는 ‘하늘과 바람과 노래와 시’를 주제로 시작된 작은 축제입니다. 학기말 꿈끼 탐색 주간에 국어와 영어교과의 통합을 모색하면서 동시에 학부모사업과 연계해 시문학제와 영어팝송대회를 함께 진행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시낭송이 끝나고 전교생의 삼행시 백일장이 열렸습니다. ‘공감해’ ‘존중해’ ‘소통해’ ‘인정해’의 인성 덕목을 제목으로 아이들은 포스트잇에 삼행시를 적었습니다. 삼행시에는 아이들의 삶과 마음, 사랑과 우정과 감사가 차곡차곡 담겼습니다.

“존(중하고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면) 해(처럼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소(중한 나의 친구는) 통(하는 것이 많고) 해(같이 따뜻한 사람이다)” “공(부가 너무 힘들고 집중이 안 될 때 우리 곁에 계시는) 감(사한 분들께 찾아가서 속마음을 털어보자) 해(박한 지식으로 우리의 고민을 공감해주고 해결해 줄 거야)”

자녀들과 함께 학부모들도 자연스럽게 삼행시에 동참했는데 자녀에 대한 끈끈한 사랑과 격려가 온돌처럼 따스합니다.

“소(개합니다) 통(통 튀는 동변중학교를) 해(가 떠도 달이 떠도 언제나 활기찬 우리 학교)” “공(주야) 감(수성이 풍부한 사춘기) 해(맑게 이겨내 보자)” “인(생을 살다보면) 정(체성이 때로 흔들리더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가자)” “존(중하기) 중(학교 3학년), 해(맑고 순수함을 잃지 않고 학교생활 하렴)” “공(부는 못해도 괜찮아. 엄마는) 감(사해. 건강하게 자라줘서) 해(처럼 밝게 빛나는 어른으로 자라줘. 사랑해)”

강당에 학반별로 붙여진 대형전지에 작품을 붙이면 학년별로 교차해 아이들의 순발력 있는 작품을 선별하고 우수작을 발표하는데 아이들의 긴장과 기대로 강당이 두근두근합니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지르는 환호, 상품을 받아든 아이들의 경쾌한 발소리, 상품을 나눠주는 선생님들의 환한 미소가 이 행사를 준비한 수고로운 손길의 땀을 말끔히 씻어줍니다. 짧은 시에도 아이들의 따스한 마음이 배어나고, 이 행사를 준비한 선생님에 대한 감사도 묻어납니다. 말이나 글에는 사람의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2부에는 영어 팝송대회가 열렸는데, 노래를 들으면서 작곡, 영어 단어의 반복, 연주되는 악기명 등 갖가지 퀴즈를 풀며 감상하는 즐거운 축제 한마당이었습니다. 영어 합창 우수반도 발표를 하게 되었는데, 그 학급에 지체장애인이 있어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휠체어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 무대에 어떻게 올라가지?” “체육선생님이 저를 번쩍 안아서 들어 올려주실 거고, 친구들이 휠체어를 올려줄 거예요.”

아이의 표정엔 선생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친구에 대한 믿음이 나팔꽃처럼 환하게 피어났습니다. 아이의 말에 그간에 쌓아온 믿음과 우정을 확인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무대에 서니까 기분이 어땠어?” “처음 무대에 선 것이 두려웠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한창 바쁜 학기말에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우기 위해 기꺼이 수고의 땀을 흘렸고, 무심한 듯한 아이들도 선생님들의 수고를 아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수고가 아이들의 마음에 말갛게 비칩니다. ‘공(들여 오늘을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피하게 즐길게요)’

원미옥<대구 동변중 교감>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최소영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