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김병준 카드’가 주목받는 이유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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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1   |  발행일 2018-07-21 제23면   |  수정 2018-10-01
20180721
최병묵 정치평론가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비대위 준비위원회의 후보 물색→압축→의원총회 선출→전국위 확정을 거쳤다. 그는 당장 주말부터 같이 일할 비대위원을 뽑기 위한 고민을 할 것이다. 24일 상임 전국위의 동의를 받아야 체제를 갖춘다. ‘김병준 선장(船長)’은 자신이 몸담은 적이 없는, 완파(完破) 직전의 배를 이끌고 항해에 나서야 한다. 그는 17일 취임사에서 “(한국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지탄, 희망과 걱정을 힘으로 삼아 잘못된 계파 논쟁, 진영 논리들과 싸우다 죽을 것”이라고 했다.

6·13 지방선거 이후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완패한 한국당이 보여준 모습이 김 위원장의 이 말에 그대로 녹아있다. 안으로는 ‘계파 논쟁’에 여념이 없었다. 밖으로는 더불어민주당 등으로부터 ‘진영 논리’에서 비롯된 공격을 받았다. 결과는 ‘국민의 실망과 지탄’ 뿐이었다. 김 위원장의 취임사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준비된 것이라는 방증이다.

그러나 그냥 보아 넘기기 쉬운 핵심 키워드가 숨어 있다. 바로 “∼죽을 것”이다. 그가 한국당과 맺은 인연은 탄핵 정국 와중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한 것이 유일하다. 실제 총리가 되진 못했다. 바로 ‘죽었다’. 게다가 한국당 내에서 그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계파나 친소(親疎) 관계가 뚜렷할 리 없다. 소속 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을 통제할 만한 공천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2020년 총선은 21개월이나 남았다. 실제 공천은 선거 3~4개월전쯤 시작할 테니 말이다. 비대위의 활동 기간을 놓고 논쟁이 있지만, 길어봤자 내년 1월쯤까지일 것이다. 아무리 혁신을 잘해도 올 정기국회가 끝나면 비상(非常)이 아니라 정상(正常)으로 돌려놓는 것이 상식이다.

‘김병준호(號)’의 앞날은 험난하다. 본인과 뿌리가 같은, 그러나 지금은 맞서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최근에 떨어지는 추세지만 아직도 60%대다. 나머지를 다 모은다 해도 어렵다. 비대위원장이 된 바로 그날, 경찰이 작년 강원랜드 프로암대회에 초청받아 골프를 친 것을 두고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은 오히려 ‘양념’일 것이다.

그는 인적청산을 비롯해 많은 변화를 예고했다. 그렇지만 ‘김병준호’가 전진하기 위해서는 역풍보다 순풍이 많아야 한다. 정치에선 특히 그렇다. ‘김병준호’가 그걸 해내는 것은 당장은 불가능하다. 배를 일단 띄워놓되 성과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치면서 말이다. 어느 바다든 바람은 한쪽으로만 불지 않는다. 적벽대전때 제갈량의 예측처럼 겨울에 갑자기 동남풍이 불 수도 있다. 주술적 주장 같지만 정치에선 천시(天時)를 잘 이용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권에선 ‘혁신’이란 말 자체가 지겹다. 선거에서 지기만 하면, 계파 갈등이 불거지기만 하면 정당들은 공식에 대입한 양 ‘혁신’을 들고 나온다. 족보조차 불분명하게 태어난 혁신이 싹을 틔워 줄기까지 튼튼하게 자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당협위원장을 뽑을 때 유권자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국민경선’을 혁신의 대명사처럼 거론하던 때가 있었다. 중앙당 전략공천은 당연 고사시켜야 할 ‘적폐’로 몰렸다. 2016년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은 ‘적폐공천’을 더 많이 활용했다. 원칙보다 흐름이 중요하단 얘기다.

‘김병준호’가 ‘혁신형이냐 관리형이냐’ ‘대표와 같은 권한을 갖는 것이냐’ ‘위원회 활동기간은 언제까지냐’ ‘비박계만 대변하는 것 아니냐’ 등의 암초를 헤쳐 나갈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현재로선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확실히 손에 잡히는 것은 있다. 그는 한국당호와 태생도 다르고, 살아온 궤적도 다르다. 그가 무엇을 하든 한국당의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적어도 그런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유권자들은 “좀 달라졌네”라는 평가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 정치에선 형식이 본질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김병준호’의 출항 그 자체를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해야 마땅한 이유다.
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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