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미의 가족 INSIDE] 이별범죄에 얽힌 문화와 내면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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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9 07:51  |  수정 2018-10-01 14:41  |  발행일 2018-07-19 제21면
재작년 살인사건 중 11% 연인관계
여성을 소유대상으로 보는 문화 탓
어릴적 버림받은 상처, 연인에 표출
20180719

최근에는 ‘안전이별’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이다. 스토킹·감금·폭행을 당하지 않고, 사진이나 동영상 유출 등의 협박에 시달리지 않는 이별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자신의 안위와 자존감을 보전하면서 이별하는 것이다. ‘이별범죄’ ‘이별살인’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옛 연인 간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별범죄가 보도된다.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해 여자 친구나 지인 등을 찾아가 해코지를 한다. 유형도 다양하고 정도도 천차만별이다. SNS를 통해 험담을 하거나 사진이나 동영상을 유출하는 폭력은 공공연하다. 평소 동선을 알고 있던 전 남자친구가 갑자기 나타나 차로 납치해 고속도로로 내달린 경우,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때린 경우, 형제와 가족들에게 ‘○○의 마음을 돌리게 해 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1년이 넘도록 끈질기게 해온 남성도 있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에도 2016년 살인사건 949건 가운데 연인관계가 10.7%에 달한다. 아예 경찰서에조차 알리지 않은 사건도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별범죄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이별범죄가 주로 남성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을 보면, 여성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아직도 지배와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 문화가 원인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여성을 사랑과 이별의 주체로 받아들이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먼저 사귀자고 대시하는 것도 남성이요, 헤어지자고 통보할 수 있는 것도 남성이라고 믿는다. 과거에는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면 남자가 자살시도를 하거나 자해하는 식으로 자기 상실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연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굉장히 공격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요즘 여성은 과거 가부장제 시대의 여성이 아니다. 고등교육을 받았고 자신의 독립성과 선택의 자유를 신봉하는 여성이다. 남성과 사귀다가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먼저 당당히 이별을 통보하는 시대가 되었다. 남성을 우위로 보고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가부장제의 남성과 남녀가 동등하고 자신의 선택을 중시하는 현대 여성 사이에 이별범죄가 발생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며칠 전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관점을 달리하면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은 성폭행범이자 여성 납치범이 될 수도 있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선녀와 나무꾼에는 선녀의 의사가 어땠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고 나무꾼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서술돼 있다. 정 장관의 문제 제기는 이별범죄를 유발하는 우리 시대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이별범죄를 저지른 남성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자. 대상관계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별범죄의 가해자는 어릴 때 버림의 상처가 깊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대상인 양육자로부터 실제 버림을 받았거나 버림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양육기간 중 충분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버림의 상처가 깊은 사람이 성인이 되어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으면, 예전에 버림받았던 상처에 소금이 뿌려진 것처럼 더욱 아프고 그래서 격분하게 된다. 그 분노를 연인에게 오롯이 투사해버린다. 이런 경우는 나이와 관계없이 발생하고, 내면의 상처의 정도와 구체적인 상황에 맞물려 증폭된다.

내면에 상처가 깊은 사람은 그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로 내 차, 내 집, 내 가족 등 특별한 것에 대한 소유욕이 지나치게 강하고, ‘내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며 집착이 지나치고 충동적이고 자제력이 낮아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한다.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고 그렇지 않을 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자존감이 낮아서 자신을 비난하는 말을 참지 못한다. 혹시 지금 부모된 우리가 우리의 아이를 그런 아이로 키우고 있지나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겸 대구사이버대 교수songyoume@d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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