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조국이 가난해서 열심히 일해”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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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8   |  발행일 2018-07-18 제31면   |  수정 2018-07-18
[박재일 칼럼] “조국이 가난해서 열심히 일해”
논설위원

프랑스의 유명 영화 감독인 뤽 베송이 직접 각본을 쓴 영화 ‘택시’에 이런 대사가 나온 것으로 기억된다.

“저 사람은 조국이 가난해서 열심히 일해.”

스피드광(狂)인 택시 운전사와 형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인데, 이들이 파리에서 택시를 모는 한국인을 보고 한 말이다. 한국인 택시운전사는 교대를 하면서 잠을 자기 위해 뒤트렁크에 들어간다. 영화가 나온 것은 1998년인데, 그 10년 전 1988년 이미 올림픽을 치른 나라를, 비록 코믹한 설정이지만 유럽인들은 저렇게 인식하나 하고 씁쓸해 했다. 물론 98년 당시 한국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이기는 하다.

한국인들은 한때 세계적으로 ‘부지런함’의 대명사였다. 대기업 신입사원은 밤 10시 이전 퇴근은 상상도 못했다.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일을 많이 한다. 한국은행의 경제동향 보고서를 보면 한국 근로자의 연 평균 근로시간(2017년)이 2천24시간이었다. OECD 국가 중 멕시코·코스타리카에 이어 셋째였다. OECD 평균 1천759시간에 비해 265시간 더 일했다. 독일이 가장 짧아 1천356시간, 일본은 1천710시간이었다. 더구나 한국 근로자의 3명 중 1명은 과로 상태란다. 물론 OECD 국가가 아닌 싱가포르나 홍콩에 비하면 한국인은 덜 일한다는 통계도 있다.

근 30년 전 첫 직장으로 증권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토요일도 증권시장이 열렸다. 선진국처럼 금요일까지 근무하고 토·일요일 연달아 쉰다는 것은 모든 직장인들의 꿈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4년 토요일을 노는 주5일제가 공식 도입됐다. 저게 가능할까 했지만 지금은 정착됐다. 주5일제는 1926년 미국의 자동차회사 포드가 처음 적용했다.

이달부터 근로기준법에 주 52시간 근무제도 도입됐다. 일주일에 최대 52시간 이상 노동을 금지한다. 과로 상태의 근로자를 줄이겠다는 정책이다. 주5일 근무제에 이은 근로현장의 대변화다.

최저임금도 같은 맥락이다.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8천350원으로 결론났다. 문재인정부는 시기는 미뤘지만 1만원을 목표로 한다. 과거에는 1시간 일해도 자장면을 사 먹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거의 두 그릇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일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은 이상 노동 강도는 적정수준이 돼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은 당연하다. 이 무더위에 누구는 땡볕에서 하루 10시간을 일해도 먹고살기 어렵고, 누구는 에어컨 바람이 세다고 타령하면서 6시 칼퇴근에 고임금을 받는다면 공평한 세상이 아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만난 여러 기업인들도 그런 평등사회의 목표에는 대체로 수긍한다. 매출이 올라가고 수익이 나서 월급을 올려주고 싶은 바람이 있단다. 그런데 한 기업인의 지적이 뼈아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기업인을 업신여긴다는 느낌이 든다. 공장 팔아 현찰 만들고, 아들 외국유학이나 시키며 적당히 놀며 살까 그런 마음도 있다”고 했다. 그는 기업인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종국에는 기업가 정신이 부재하는 상황이 오늘의 한국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4차례나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장면은 마음에 걸린다. 재판중인, 또 3대 세습의 그룹 총수란 치명적 약점이 있지만, 1년도 아니고 분기에 순이익을 무려 150억달러나 내는 대한민국 대표 회사의 오너가 대통령 앞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언젠가는 없어질 체제라 했다. 반면 막스 베버는 청교도적 근면성과 윤리는 자본주의를 윤택하게 만든다고 진단했다. 특히 베버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했다.

경제의 또 다른 지향점은 정의로운 평등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 경제는 부지런한 근로자와 창의에 가득한 기업가정신으로 굴러간다. 행여 이 정부가 흘러간 사회주의적 관점으로만 경제를 몰고 가고자 하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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