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위기를 자초한 정치인들을 보며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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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7   |  발행일 2018-07-17 제30면   |  수정 2018-07-17
[취재수첩] 위기를 자초한 정치인들을 보며
구경모기자<서울취재본부>

‘습관이 팔자다.’ 위기를 자초한 정치인 몇몇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수 년 전 중앙부처에 근무하다가 지역 고위공무원으로 부임하게 된 인사가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를 찾았다. 식사자리가 마련됐다. “부임을 축하드립니다.” 나름 공손히 건넨 인사였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영남이 ○○신문한테 안 되잖아.” 인사말을 회사 비하로 받은 셈이다. 그의 비하 발언은 계속됐다. “난 ○○지역에 오기 싫었어. 내가 원래 ○○라인이잖아. 근데 내가 ○○고등학교 나왔거든.”

“아, 저희 아버지도 ○○고교를 졸업하셨습니다.” “이것 봐 ○○고등학교 나왔다고 하니까 모든 게 해결되는 거야.” 이 고위 관료는 호탕하게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호탕한 그의 웃음과 달리 기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지역의 폐쇄성을 지적한 건가. 아니면 학연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의미인가.’

복잡해진 머리가 진정되기도 전에 이 고위 관료는 또 다른 돌발 행동으로 충격을 줬다. 자리를 함께한 기자와 다른 부하 공무원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농담을 이어갔다. 분위기가 어색해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이어갔다. 공적인 자리였다면 ‘자질’ 논란이 일어날 정도의 수위도 넘나들었다. 상당히 불쾌했지만 사적인 자리여서 공식적으로 문제삼지는 않았다.

이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 인사는 초선 의원으로 나름 성공적 가도를 달리다가 한 토론회에서 부적절한 언행이 문제가 돼 위기에 처했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그의 평소 습관이 부지불식간 드러난 결과다. 또 있다. 성폭행에 연루돼 정치 생명이 끊긴 경우다. 이 인사는 좋지 않은 집안 환경과 학벌을 극복하고 실력으로 고위관료를 거쳐 국회의원까지 된 케이스였다. 당시 지역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평소 부지런하고 젠틀한 이미지와 달리 술에 취하자 행동거지가 흐트러지면서 말이 두서가 없어졌다. 감정 기복도 심했다. ‘울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후 몇 달 뒤 성폭행에 연루돼 정치 생명이 끝났다. 사고 당시 이 인사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술자리에서의 잘못된 습관이 자초한 결과라고 본다.

이와 별도로 위기를 타개하겠다며 자유한국당이 당론으로 들고 나온 ‘신보수주의’도 한국당 위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신보수주의가 치열한 고민의 결과가 아닌 ‘신(新)’자를 붙이면 좋을 것이란 안일한 습관의 발로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조금만 공부를 했다면 ‘신보수주의’를 당론으로 내세울 수가 없다. ‘신보수주의’는 사회안전망을 극소화하고 시장에 최대의 자유를 주겠다는 극우논리다. 이른바 ‘능력 없으면 죽어라’는 이론이다. 이를 비판하며 등장한 이론이 신자유주의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최악에 대한 차악이 등장했다’고 표현한다. 만약 한국당이 ‘신보수주의’ 개념을 알고 쓴 것이라면 민심과 반대로 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선거 패배는 사실 필연이었다.

야망이 있다면 평소 습관부터 돌아 보자. 또 당론을 정할 땐 습관처럼 ‘新’자를 붙이지 말자.구경모기자<서울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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