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사회를 멍들게 하는 ‘기봉이 흉내’

  • 윤철희
  • |
  • 입력 2018-07-17   |  발행일 2018-07-17 제30면   |  수정 2018-10-01
‘기봉이 자세’하며 박장대소
TV프로 장애인 희화 논란
영구·맹구때와는 시대 달라
상대적 평등 개념 발전해서
웃음코드뒤에 차별 못감춰
20180717
강선우 대통령직속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얼마 전 방송된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을 두고 ‘장애인 희화화’ 논란이 일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 신현준씨가 패널들의 거듭된 요구에 못 이겨 12년 전 자신이 맡았던 배역인 ‘발달장애인 연기’를 재연하면서다. 당시 맥락이 전혀 없던 상황은 아니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신현준씨가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과 맡았던 배역들에 대한 대화가 오갔는데, 크게 흥행했던 영화 ‘맨발의 기봉이’ 언급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했다. 다만 패널들이 기봉이 자세를 따라하며 박장대소한 것, 그리고 신현준씨에게 ‘기봉이 인사’를 해 달라고 졸랐던 상황이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다. 신씨의 기봉이 연기에 패널들은 폭소했고, 제작진은 ‘넘치는 개그 열망’이라는 자막을 넣었다. ‘개그 열망’이라는 자막으로 발달장애인이 개그 소재로 쓰이고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 출연진이나 제작진이 발달장애인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려는 ‘악의적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그런 행위가 어떻게 해석될 수 있고, 어떻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 한층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탓이었을 게다. ‘기봉이 흉내’가 일부에겐 직관적인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반면, 또 다른 일부에겐 쓴웃음을 짓다 못 해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실수(失手)’ 혹은 ‘실례(失禮)’로 보인다. 이런 논란은 이제껏 우리 사회가 ‘장애인 희화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1980년대 말, 아니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영구’ ‘맹구’ ‘오서방’ 등 무언가 조금 부족한, 소위 말하는 ‘바보 흉내’가 브라운관을 수놓았다. 당시는 ‘바보 흉내’가 실례가 아닌 최고의 개인기가 되는 시기였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다. 하지만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해당 프로그램의 폐지를 청원하는 글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등장할 정도다. 권리나 의무·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다는 ‘평등(平等)의 개념’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상대적 평등’으로 발전한 덕분이다.

물론 ‘예능은 예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정색하고 비판할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는 반론도 상당하다.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을 웃음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에 대해선 비판 받아 마땅하다. 나와 다른 점에 대해 ‘차이난다, 틀리다’고 여기면서 대상에 대한 혐오로까지 확장돼 사회를 멍들게 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의 ‘대치 구도’를 만드는 것은 쉽고, 재밌고, 때론 비논리를 논리로 보는 ‘착시 현상’도 일으킨다. 주로 사회적 약자나 소수를 ‘비정상’의 자리에 위치시키면서, 본인들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고 ‘굴절된 안도감’을 얻으려는 잘못된 시도들이 행해지는 탓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그에 따른 사회 문제는 꼭 수반된다고 배웠다. 과거엔 시의성 없던 주제인 ‘장애인 희화화 코미디’가 시의성 있는 주제가 된 것에 만족하고 싶진 않다. 배우 조승우씨는 10년 전 영화 ‘말아톤’ 촬영 당시 자폐아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구에 “자폐아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불같이 화를 내며 거절한 바 있다.

‘시의성(時宜性)’의 사전적 의미는 ‘그 당시 사정에 알맞음. 또는 그런 요구’다. 언필칭 ‘시의성 없어도 한참 없는’ 주제이길 염원하지만, ‘장애인 혐오·차별 문제’는 여전히 시의성 있는 주제다.

장애인 혐오나 차별을 더 이상 ‘웃음 코드’ 이면에 감추기는 힘들다. 장애인 희화화 문제는 돌고 돌아 ‘시의성 없는 주제’로 재차 탈바꿈될 것이다. 시의성 문제로 이 주제가 더 이상 칼럼 소재가 될 수도 없을 것이고. 그날이 빨리 오길 오늘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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