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빛이 있으라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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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6 07:54  |  수정 2018-10-01 13:59  |  발행일 2018-07-16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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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창세기에 “빛이 있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우린 빛을 무지·탄압 등과 같이 어둠으로 상징되는 많은 부정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를 표현하는데 사용해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대학들은 진리를 빛에 비유하는 표어를 내걸고 무지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합니다. 사회적으로도 불의와 억압을 깨고자 하는 의지를 세상에 처음 빛이 드는 새벽으로 비유하거나 어둠을 밝히는 촛불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빛이 있으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빛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빛은 ‘우주 빅뱅’의 은유적인 표현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빛과는 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죠. 흥미롭게도 ‘우주 빅뱅’ 이론 창시자인 벨기에 천문학자 조르주 르메르트 박사는 가톨릭 사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향기박사 같은 뇌과학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빛이 있어도 빛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이 없다면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을 통해 빛을 감지합니다. 정확하게는 눈 속에 있는 망막이란 감각기관을 통해 우리는 빛을 감지합니다. 눈이 카메라라고 비유한다면 망막은 필름과 같은 존재입니다. 즉 아무리 비싸고 좋은 카메라라도 필름을 넣지 않으면 사진을 남길 수 없는 것처럼, 망막이 없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눈에 담아 보아도 우린 실제 볼 수 없을뿐더러 추억으로 남길 수도 없는 것이죠. 망막은 우리 뇌의 발달 과정에서 중추신경계가 돌출돼 만들어진 신경조직입니다. 따라서 망막에 존재하는 신경세포들은 중추신경계 속의 신경세포들처럼 한 번 훼손되면 재생이 되지 않습니다. 망막의 황반에 존재하는 신경세포가 파괴되는 황반변성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망막의 시신경이 파괴되는 녹내장과 같은 시각질환은 일단 발병하면 완전한 시력 회복이 불가능한 것이 그런 이유입니다.

망막 속에 빛을 감지하는 신경세포는 두 종류가 있는데,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그것입니다. 우리가 밝고 어두운 것을 구별하는 것은 막대세포의 덕이고, 색깔을 구별하는 것은 원뿔세포의 덕입니다. 특히 우리가 밝고 어두운 것을 구별하도록 해주는 막대세포는 빛에 아주 민감해 아주 미세한 양의 빛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각연구자들은 과연 인간의 막대세포가 정말 얼마나 미세한 빛까지도 감지할 수 있을까 궁금해 했습니다. 양자물리학의 발전으로 빛은 광자라는 물질을 담고 있는 에너지임을 알게 되었고, 이후 시각연구자들은 과연 사람이 빛의 최소단위인 하나의 광자를 감지할 수 있을까를 연구했습니다.

최근 미국 록펠러대의 알리파샤 바지리 교수 연구팀은 ‘사람이 하나의 광자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완전 빛이 차단된 곳에 실험자를 두고 하나의 광자를 눈에 쏘아주거나 쏘지 않고 사람들이 정말로 빛을 보았는지 여부를 물어보고 그 대답에 얼마나 확신을 하는지도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무려 3만번이 넘는 시도를 통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으며, 그 결과 사람은 하나의 광자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사실 실험자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실제 광자를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뇌가 광자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죠. 바지리 교수 역시 이번 실험 결과의 의의를 “가장 놀라운 점은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상의 문턱에 선 느낌입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태초에 빛이 있었을 때 얼마나 많은 수의 광자가 있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볼 수 있었는지는 앞으로 우리나라 미래과학자들이 이번 연구처럼 양자물리학과 뇌과학 간의 융합연구를 통해 밝혀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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