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1999, 면회’부터 ‘소공녀’까지…청년들이 만드는 광화문시네마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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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3   |  발행일 2018-07-13 제43면   |  수정 2018-10-01
청춘들의 거침없는 이야기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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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시네마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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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시네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상업영화 진영 바깥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화를 만드는 영화창작집단으로 알려진 이들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동기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영화제작사로, 현재 김태곤·권오광·우문기·이요섭·전고운 감독과 김지훈·김보희 프로듀서가 주요 멤버다. 지금까지 이들은 다음 네 편의 장편영화를 한국영화계에 내놓은 바 있다.

‘1999, 면회’(2012)는 스무 살을 맞이한 세 친구들의 1박2일 군대 면회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7’ 같이 1990년대를 낭만적으로 그린 작품처럼 보이나, 1997년 IMF 사태 이후 기업들이 문을 닫고 해고자가 속출해 가계가 몰락하면서 비싼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알바와 군대로 쓸려갔던 청년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처음 공개된 후 같은 해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 연이어 진출한 데 이어 2013년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김태곤 감독의 전작 ‘독’(2008)은 인간의 탐욕과 종교적 광기에 대한 소재를 다룬 심리드라마였다.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출품될 당시 서서히 관객들의 숨통을 조이는 연출에 탁월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1999, 면회’ 이후 배우 김혜수와 함께한 ‘굿바이 싱글’(2016)로 성공적으로 한국영화계에 안착했다.

‘족구왕’(2013)은 광화문시네마의 존재를 각인시킨 첫 작품이지 않을까. ‘1999, 면회’에서 세 친구 가운데 한 명을 연기한 배우 안재홍의 매력이 폭발한 작품이기도 할 것이고. 김태곤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우문기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으랏차차 스모부’ ‘워터 보이즈’ ‘스윙걸즈’로 대표되는 몇몇 일본 청춘물을 연상케 하지만 한국적으로 변주된 ‘병맛 코드’를 장착한 코미디물이자 청춘 로맨스물로 기능한다. 취업 준비장으로 변해버린 대학 캠퍼스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풍자하거나 활력을 잃은 청년들을 족구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 상황들은 이전 한국영화계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공개되었을 당시 전회 상영 매진은 물론이고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까지 객석을 떠나지 않은 관객들은 감독과 배우들에게 박수와 환호성, 그리고 뜨거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이후 안재홍은 ‘응답하라 1988’에 캐스팅되면서 주목받는 배우로 단숨에 부상한다.


세 친구들의 군대 면회기 ‘1999, 면회’
IMF후 휴학·복학 반복, 군대 간 청년
취업준비장 변모 캠퍼스 풍자 ‘족구왕’
한국적 병맛코드 장착 로맨스 코미디
청년 사연 해결 아줌마 ‘범죄의 여왕’
위스키와 담배 위해 집 포기 ‘소공녀’

상업영화 비켜간 젊은 영화창작집단
천편일률 韓영화 반기든 빛나는 개성



‘범죄의 여왕’(2015)은 아들이 사는 고시원에 수도요금이 무려 120만원이 나오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가 또 다른 사건을 감지하고 맹활약을 펼치는 아줌마 ‘미경’의 활약을 그린 스릴러다. 지금껏 형사 또는 탐정이 등장해 사건을 수사하는 영화가 주를 이뤘다면 ‘범죄의 여왕’은 아줌마 캐릭터의 활약상과 스릴러 장르를 결합시켜 색다른 장르를 완성했다. 미경을 연기한 배우 박지영은 사건 조사를 핑계로 희망을 저당 잡힌 것에 다름 아닌 청년들의 사연을 들어주는 오지랖 넓은 아줌마 연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누아르 느낌의 하드보일드한 색채를 띠면서 그 안에 아줌마나 고시생 같이 이질적인 캐릭터들을 넣어 차별화를 꾀했다. 그 덕에 감춰진 사건을 파헤쳐가는 미경과 조력자 개태(배우 조복래)의 추적 과정은 긴장감을 자아내며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한편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캐릭터의 조화가 신선한 재미를 불어넣는다.

‘소공녀’(2017)는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청춘 판타지 영화가 될 것이다. ‘범죄의 여왕’에서 402호 경진숙으로 나왔던 배우 이솜이 연기한 ‘미소’는 가사도우미라는 범상치 않은 직업과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를 즐기기 위해 집을 포기하는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 미소가 집을 떠나 대학 시절 밴드 동아리 친구들을 찾아가며 펼쳐지는 도시 하루살이는 다양한 회사들로 채워진 빌딩 숲, 오래된 빌라, 아파트, 단독 주택, 고급 주택, 오피스텔 같은 건물과 함께 다양한 군상의 캐릭터를 보여주며 유쾌한 결을 잃지 않으면서도 동세대 관객들의 공감과 웃음을 선사한다.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후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까지 받으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유니크한 소재에 독보적인 캐릭터와 답답한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드는 탄탄한 스토리에 몽환적인 영상미가 더해져 관객들의 N차 관람까지 이끌어내며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6만명 가까운 스코어를 거뒀다.

광화문시네마가 만든 영화들을 차례로 관람하다 보면 재미난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광화문시네마의 모든 작품에는 배우 안재홍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1999, 면회’에서 ‘승준’으로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족구왕’에서는 복학생 ‘만섭’으로 등장했다. 이어 ‘범죄의 여왕’에서는 합격탕을 마시면서 지나가는 고시생으로 나온다. 김태곤 감독의 첫 상업영화 ‘굿바이 싱글’에는 산부인과 의사 ‘덕수’로 우정 출연했다. ‘소공녀’에서는 주인공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로 주연을 맡았다. 광화문시네마의 작품들은 모두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쿠키영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쿠키영상은 영화에서 엔딩 크레딧 전후에 짧게 추가된 장면을 말하는데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광화문시네마는 매번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차기작의 대략적인 콘셉트를 담은 짧은 영상을 삽입해왔다. ‘1999, 면회’의 말미에 등장하는 ‘족구왕’ 예고 영상이 시작이었다. ‘소공녀’에도 강시가 소재인 차기 프로젝트가 쿠키 영상으로 담겨 있다. ‘돌연변이’를 연출한 권오광 감독의 작품이란다.

광화문시네마는 규모는 커지나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공산품들이 되어가는 한국영화계에서 단연 빛나는 개성을 지녔다. 게다가 이들은 젊다. 그렇기에 거침없이 동시대 청춘들의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변주하고 있다. 광화문시네마의 재기발랄할 차기작을 기다린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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