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서버비콘’·‘펠리니를 찾아서’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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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3   |  발행일 2018-07-13 제42면   |  수정 2018-10-01
하나 그리고 둘

★‘서버비콘’
맞붙어 사는 백인·흑인 두 가족의 끔찍한 민낯


20180713

인종차별·보험 살해…부실한 美 사회 허울 벗겨
울타리 두고 아이들 야구공 주고받는 장면 백미


‘서버비콘’(감독 조지 클루니)은 겉보기에 완벽한 도시, ‘서버비콘’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그 사건은 맞붙어 있는 두 집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이 곳에 이사 온 ‘마이어스’ 가족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웃들에게 배척과 멸시를 당한다. 집 주위에는 높은 담이 생기고, 마트에서는 이들에게 물건을 팔지 않으며, 집 앞에서는 밤낮 없는 시위가 벌어지고, 그것은 이윽고 폭력 사태로까지 번진다. 그 동안 ‘가드너’의 가정에서는 그와 마찬가지로 끔찍한 보험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는 이처럼 각각 집 밖과 집 안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사건을 부러 별개로 다루면서도 종종 교차 편집을 통해 그 연관성을 강조한다. 1950년대 미국은 그런 시기였다. 그들은 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고, 아이젠하워 시대를 거치며 유례 없는 풍요로운 사회(Affluent Society)를 이룩했다. 블루 칼라와 화이트 칼라의 소득격차가 줄어들면서 ‘평등’이라는 가치에도 가까워진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서버비콘의 실체만큼이나 부실한 것이었다. 집단주의적 윤리가 우세해지고 순응, 획일화의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다수의 생활 방식에 따르지 않는 이들은 외면당했으며, 인종차별의 관습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마이어스 가족에게 일어난 일들은 1950년대 뉴욕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조지 클루니 감독은 여기에 백인 가정의 범죄를 병치시켜 그 시대의 허울을 벗겨낸다. 처제와 바람이 난 가드너는 사람을 시켜 아내를 살해하고 보험금을 타내려 하지만 계획은 자꾸만 틀어져 또 다른 범죄를 불러일으킨다. 인물들이 의도한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고, 모두가 각자의 덫에 걸려 비극을 맞이하는 상황은 일반적인 블랙 코미디보다 무겁고 심각하다. 두 집의 아이들이 어울리고 교감하는 몇몇 장면들, 그 중에서도 그들이 울타리를 가운데 두고 야구공을 주고받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60년대, 반문화(Counter Culture) 운동을 예견하듯 인간의 추악함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소년들은 그들만의 공감대 안에서 아버지 세대와는 분리된 커뮤니티를 이룬다. 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자가진단, 시대를 꿰뚫어 보는 힘이 뛰어난 작품이다. (장르: 범죄, 스릴러,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5분)


★‘펠리니를 찾아서’
영화에 빠진 몽상가 루시…꿈 향해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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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몽상가들’(2003)에서 미국인 ‘매튜’는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모인 관객 사이에서 이렇게 말한다. “스크린(Screen)은 또한 실제로 하나의 장벽(Screen)이었다. 스크린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차단했다”(Screened). 영화의 제목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 문장은 영화광들이 세상, 곧 현실과 거리를 두고 영화 속에 창조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장처럼 정말 영화가 관객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관객이 스스로 아수라장의 현실과 자신 사이에 장벽을 세우는 것일까. 뭐가 먼저였든 어릴 때부터 엄마와 영화 보는 즐거움 밖에 모르던 ‘펠리니를 찾아서’(감독 타론 렉스톤)의 루시(세니아 솔로)는 이제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 행위에 ‘몽상가들’의 쌍둥이 남매가 결말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혁명에 동참하기 위한 대의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소심하고 가녀린 소녀에게는 같은 분량의 용기가 필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를 집 안에 가둔 것도, 집 밖으로 끄집어내준 것도 영화라는 점이다.


집 안 가둔 것도, 집 밖으로 끄집어낸 것도 영화
현실속 꿈인 이탈리아 거장감독 만나러 가는 여정



루시가 판타지 속에 살도록 일조한 엄마가 자신의 병을 알게 되었을 때쯤 루시는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에 흠뻑 빠져 그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로마에 있는 유명한 영화감독을 만나겠다는 열망은 최소한 현실 안에서의 꿈이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한 여정에서 루시는 비로소 우리가 ‘비현실’과 대비시켜 일컫는 ‘현실’을 대면한다. 그 곳에는 뜻밖의 친절과 환락, 그녀가 처음 경험하는 사랑도 있지만 기다림과 거절, 사기꾼과 폭력, 죽음의 공포와 슬픔까지도 공존하고 있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 전체가 페데리코 펠리니를 향한 오마주라 할 만큼 ‘길’(1954)부터 ‘달콤한 인생’(1960), ‘8과 1/2’(1963), ‘영혼의 줄리에타’(1965) 등 그의 명작을 곳곳에 인용할 뿐 아니라 그가 60년대 이후 보여준 특유의 몽환적인 스타일을 따른다. 그래서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절대적 리얼리즘이란 없다. 상상과 현실은 경계가 너무 모호하기 때문”이라는 펠리니의 말은 영화의 톤 앤 매너를 예고하는 문구라고 할 수 있다.

로드 무비의 형식이 가미된 만큼 루시의 여정 속에 만나는 이탈리아의 풍광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부터 아레나 원형 극장, 람베르티 탑, 산 마르코 광장 등 베로나와 베니스의 명소뿐 아니라 무심히 스쳐 가는 거리의 모습도 동화 속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이 곳에서 루시는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현실과 부딪히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 트럭을 얻어 타고 베니스에서 로마로 가는 그녀의 지친 눈동자에는 이탈리아의 슬픔과 고독, 가난이 담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까지 약 8분간 음악과 영상만으로 진행되는 스토리텔링이 잔잔하면서도 강렬하다. 뭉클하고 아릿하고 감격스런 성장담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3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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