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향수를 찾아-종이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구글플러스
  • 기사내보내기
  • 조진범기자
  • 2018-07-13
  •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김성희<극단 가인 대표>
개인적으로 천이나 종이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포장지나 자투리천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재활용할 때가 많다. 천은 여유와 운치가 있고, 종이는 다양성과 향기가 있다. 종이의 최고봉은 책이다. 아침에 꼭 신문을 찾던 아버지, 여성잡지를 보며 생활과 미용 등의 정보를 얻고 필요하면 오려서 냉장고문에 붙여두던 어머니, 월간 학생지를 손꼽아 기다리다 책이 오면 보물같이 다루면서 한 달 내내 닳도록 보았던 나를 떠올려본다. 여고시절, 근처 대학교 학생들이 소중하게 양팔로 꼭 안고 다니던 전공서적과 노트들을 보며 부러워했고, 그런 멋스러움에 반해 캠퍼스에 대한 낭만을 꿈꾸었다.

다양한 책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새겨진 책장을 넘기면서 사색하는 재미는 작은 세상을 얻는 것과 같았다. 그중 만화책은 나의 연극인생의 출발에 큰 도움을 주었다. 만화 스토리의 풍부한 상상력과 캐릭터의 독특한 행동·표정, 그리고 말풍선의 기발한 대사는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그것들을 따라해 보며 그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과 호흡을 같이하며 즐거운 모험을 하였다. 지금도 나의 책장엔 오래된 만화책들이 꽂혀있어 한번씩 꺼내어 보곤 한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여전히 어느 장에선 감탄을 하며 공감과 아쉬운 한숨을 내쉰다. 만화는 역사와 현재와 공상과학을 보여주어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꿈을 그리기도 한다. 종이의 진정한 매력은 무한한 창의성을 내포한 미완성의 존재라는 것이다. 공작과 채색을 통해 매력 있는 변신을 하면서 공간과 환경을 아름답게 물들인다는 것이다. 배우 중에 하얀 도화지 같은 이들이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배우, 물론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배우들의 장점도 그에 못지않다. 다만 종이를 말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도화지 같은 이’라는 표현은 그만큼 배우에 대한 기대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비닐과 플라스틱, 모니터와 액정이 익숙한 요즘의 커뮤니케이션 문화 속에 한번씩 향긋한 종이의 냄새를 맡아보자. 반갑게도 국내의 대형 빵가게 두 곳이 비닐포장을 근절하고 종이봉투를 사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갓 구운 고소한 빵을 숨 쉬는 봉투에 가득 담고 누군가랑 함께 먹기 위해 가는 행복한 걸음을 바라본다. 오늘 나는 동네에 있는 헌책방을 둘러보고 편지지를 사고 박스를 모아 이웃집 할머니에게 건네주며, 색종이로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에 날려 보내련다. 세상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편리하고 경제적인 것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편리함의 과정에서 숲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은 더욱 종이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자연이 생명을 찾아가고 그리하여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종이가, 그 소박한 향기를 품은 채 우리 곁에 오래도록 머물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김성희<극단 가인 대표>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