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삼계탕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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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1   |  발행일 2018-07-11 제30면   |  수정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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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덥고 습한 여름에 기력 보충을 위해 복날 몸을 보하는 보양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삼계탕이다. 1607년 발간된 한글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연계찜(영계찜)과 수증계(닭찜)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고기가 귀했던 시절 집안에서 흔하게 키우던 닭을 이용해 닭백숙이나 닭국을 해 먹었던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에는 닭은 꿩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닭은 알을 낳기 때문에 특별한 때가 아니면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고기는 사냥으로 잡은 꿩을 많이 사용했다. 물론 양반들이나 부유층의 이야기지만 여하튼 닭은 귀하게 대접받았다. 귀한 손님, 특히 백년손님인 사위한테 씨암탉을 잡아 대접한다는 말이 있듯이 귀하게 여겨왔다. 고려시대에는 궁중에서 시간을 알리는 닭을 사육했고, 한 해를 보내며 잡귀를 쫓는 의식에 제물로도 사용했다. 혼례 초례상에도 닭을 청·홍보에 싸서 올려놓고 폐백상에도 닭을 이용했다. ‘동의보감’에도 붉은 수탉, 흰 수탉, 검은 수탉, 오골계 등 닭의 종류에 따른 효능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닭은 새벽을 알리고 귀신을 쫓는 벽사의 기능도 지녔다. 예부터 닭이 새벽에 제때 울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도 여겼다. 조선시대 닭을 약용이나 식용으로 사용했던 기록이 ‘동의보감’ ‘식효찬효’ 등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때 화가인 변상벽이 ‘자웅동추’라는 꼬리가 긴 닭 그림을 남겼는데 화가 마군후는 이 닭 그림에 “닭과 인삼과 약재가 어우러지면 최고의 공을 세운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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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식전문가>

삼계탕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 시절 양계산업의 발전으로 흔해진 닭에 부유층들이 백삼가루를 넣어 닭백숙이나 닭국을 만들어 먹으면서부터다. 또 1960년대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수삼의 장기 보존이 가능해 닭에 수삼을 넣기 시작하면서 삼계탕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원래는 계삼탕으로 불리다가 인삼이 닭보다 우선이라 하여 삼계탕으로 바뀌게 되었다. 닭고기의 대중성과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고려인삼의 약리 효과 등과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으로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한국 대표 음식이 되었다. 금산 지역의 인삼재배가 대량화되면서 수삼의 공급이 원활해지자 닭백숙 식당이 점차적으로 삼계탕 식당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1973년 삼계탕은 통조림으로 가공돼 수출되기 시작했고 한방 삼계탕, 대통 삼계탕 등 다양한 제조법과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포장되어 가공식품으로도 점차 시장이 커지고 있다. 무더운 여름철 삼계탕 드시고 원기 회복해 건강한 여름 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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