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비대위를 ‘捨石’으로 쓰면 안 된다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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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1   |  발행일 2018-07-11 제30면   |  수정 2018-10-01
결기와 절박함 없는 한국당
비대위의 성격부터 정하고
위원장에겐 전권 부여해야
의원들 생존위해 꼼수쓰면
다음 총선땐 정말 끝장날 것
20180711
황태순 정치평론가

“개작두로 치겠다.” 2014년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의 말이다. 그해 7월 보궐선거에서 새정련은 ‘11 대 4’로 새누리당에 참패했다. 이에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회가 출범했으나 고질적인 계파싸움의 와중에 또 좌초됐다. 과거 민주당의 ‘난닝구와 빽바지’ 싸움을 방불케 했다. 이때 긴급소방수로 투입된 문희상 위원장이 당내 계파싸움을 경고하면서 ‘개작두’가 등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희상 비대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출범 5개월 만에 문재인 대표체제에 바통을 넘겼다. 하지만 문재인 체제에서도 계파갈등은 지속됐고, 결국 그해 말 안철수를 앞세운 호남파들이 분당해 나갔다. 문재인 대표는 김종인 비대위원회에 전권을 넘기면서 2016년 총선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문희상-김종인 두 차례의 비대위를 통해서 당을 정비하고 집권의 기반을 조성했던 것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절반의 성공이라도 거둘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양 계파로부터 중립적인 인물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직계 청년조직인 연청 회장과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노무현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고 열린우리당 당의장도 역임했다. 그러니 양 계파 모두 최소한 우리를 배척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둘째, 권위다. 당시 5선 의원으로 이미 당 대표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그렇기 때문에 위계의식이 강한 정치권에서 나름 말발이 섰던 것이다. 셋째, 더 이상 큰 욕심이 없었다. 당권이나 대권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또 계보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당내의 순응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인적청산은 1년 후에 등장한 김종인 비대위원회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비대위원회 출범을 놓고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한국당은 곧 의원총회를 열어 비대위원장을 결정하고 17일 전국위원회를 개최해 비대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예정대로 비대위를 출범시킬 수 있을지, 또 출범한 비대위가 중도에 좌초하지 않고 순항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현재까지 보여준 한국당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우선 김성태 권한대행이 의원들의 중지를 모아 비대위를 출범시키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반발에 부닥치자 비대위원회 출범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국민공모를 통해 비대위원장을 추천받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찔러보는 식으로 진행하는 바람에 세간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비대위원장은 ‘독배’를 마셔야 하는 자리다. 무너져가는 보수와 자유한국당을 되살려 놓아야 한다. 자칫하면 계파싸움의 희생물이 되어 바보가 되기 딱 십상이다. 얼마 전 김희옥 비대위와 인명진 비대위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비대위원장이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전권을 틀어쥐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당 의원 누구 하나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저 이 곤궁한 지경만 잘 버티면 된다는 안이함에 빠져 있다. 스스로 ‘내 목을 개작두로 쳐도 좋소’하는 결기도 절박함도 없다. 그러니 조금 이름 있는 명망가들을 이리 저러 찔러 보는 것 아니겠는가. 또 비대위의 성격을 놓고도 아직까지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당이 찾는 것은 비대위원회가 아니라 자신들의 치부를 가려줄 비치파라솔을 찾는 게 아닌지 의문이 간다.

정치는 현실이다. 114명 국회의원이 끝장토론을 해서라도 비대위의 성격을 먼저 정하라. 그리고 백지위임장을 써서 비대위원장에게 전달하라. 그래야 비대위가 수술을 하든 보약을 주든 할 것 아닌가. 만약 비대위를 사석(捨石)으로 적당히 써버리고 자기들만 살려는 꼼수를 부린다면 국민들은 2020년 총선 때 정말 개작두로 칠 것이다.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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