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깜빡이의 逆說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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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0   |  발행일 2018-07-10 제30면   |  수정 2018-07-10
취지가 옳고 의지 강하다고
최상의 결과 담보하진 못해
상대적 박탈감은 갈등 유발
진단 잘못되면 처방도 오류
무리다 싶으면 정책 수정을
[화요진단] 깜빡이의 逆說
장준영 교육인재개발원장

올 초 평창올림픽 컬링 열풍이 거세게 불어닥칠 무렵, 운전자들의 시선을 끄는 플래카드가 대구지역 곳곳에 내걸린 적이 있다. 거기엔 ‘안경선배’ 김은정 선수가 영미를 다급하게 부르며 한마디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었다. “영미~ 깜빡이 켜고 들어가!” 방향지시등 켜기 캠페인의 하나로, 추돌사고가 한 해 3만건에 육박하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한 취지였다.

무엇이든 불쑥 치고 들어오는 것은 그리 반갑지 않은 일이다. 급차로 변경이나 새치기가 누군가에겐 습관 또는 일상일지 몰라도 상대에겐 심한 불쾌감을 주거나 위협적이다. 처음엔 급해서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던 뒤차들도 싸가지없는 경우를 반복해서 당하게 되면 분노와 함께 쌍욕이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운전매너 역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되는 게 아닌지 모를 일이다.

요즘엔 깜빡이를 켜주는 차가 고마울 때가 많다. 당연한 행위에 감사의 마음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비정상적이라는 방증이다. 앞차나 옆차의 진로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여유와 대비가 가능해진다. 어찌보면 소통이다. 미안하거나 급박한 상황일 때 비상깜빡이만 켜줘도 많이 온화해진다. 그래서 상식과 매너는 이해의 폭을 넓히고 갈등과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경우가 있다. 앞차가 깜빡이를 켰음에도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그렇다. 차로를 변경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놓고는 함흥차사다. 이때부터 옆차나 뒤차는 죽을 지경이다. 끼어들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빠지겠다는 건지, 그냥 가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무척 신경이 쓰인다. 속도를 내기도, 줄이기도 애매한 상황이 지속되면 난감해진다. 슬슬 짜증이 나고, 언제 차로를 바꿀지 오히려 불안감만 가중된다. 이럴 때면 속담처럼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울 지경이다.

지금 문재인정부의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이 분분하다. 적지 않은 자영업자들이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정부는 괜찮다고, 곧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마이웨이를 외치고 있다. 경제라인에서의 엇박자도 심심찮고, 기능이 애매모호한 몇몇 특별위원회도 혼선과 논란에 가세한다. 일단 깜빡이를 켰으니 따르라는 식이다. 차 안의 일행은 쭉 가자고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다. 상당수가 그쪽 방향이 아닌 것 같다고,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갸우뚱하지만 알 턱이 없다. 합리적인 리딩이 아쉬운 대목이다.

재정 투입이 사실상 전부인 정책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다. 각종 경제지표와 체감경기는 얼추 비슷한 흐름인데 당국은 나쁘지 않다고만 한다. 국가가 많은 것을 책임지고 지원하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데 누가 감히 딴죽을 걸까.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가로젓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행여 나라 곳간이 거덜나지 않을까, 그렇다면 세금은 얼마를 더 내야 하나 등에 대한 의문을 가진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복의 힘은 무섭다. 많은 걸 무뎌지게도 하지만 익숙하게도 해준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것을 깨우치게도 한다. 시급한 현안으로 꼽히는 일자리 창출과 저출산 문제를 보자. 이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라 역대 정권 모두가 해법을 찾는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00조원 넘는 천문학적 재정이 투입됐음에도 불구, 여전히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진단이 잘못 됐으니 옳은 처방이 나올 수 없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다.

예산 규모가 대폭 확대된 주거대책이 최근 발표됐다. 청년과 신혼이 강조되는 바람에 정작 본격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30~40대 무주택자를 중심으로 소외감과 함께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들려온다. 깜빡이를 넣었더라도 아닌가 싶으면 끌 줄도 알아야 뒤따르는 사람의 불안감이 해소된다. 어쩌면 그게 더 정직하고 정의로울 수 있다. 정부는 현재 두고 있는 수가 ‘무리수’가 아니라 ‘신의 한 수’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장준영 교육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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