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죽어야 산다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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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09   |  발행일 2018-07-09 제31면   |  수정 2018-07-09
[월요칼럼] 죽어야 산다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 본 지 꽤 오래된 미국산 코미디 영화(1992년 제작)다. 그런데 스토리와 내용 전개가 너무 재미있고 교훈적이어서 또렷이 기억된다. 평점이 10점 만점에 8.5점이니 다들 비슷한 호평을 한 것 같다. 뾰족한 콧날의 명배우 메릴 스트립이 여주인공 매들린 역을, 골디 혼이 경쟁자 친구이자 어릴적 앙숙이었던 헬렌 역을 맡았다. 극중 매들린과 헬렌이 서로를 부르는 약칭은 ‘MAD’ ‘HELL’로, 스토리와 매치된다. 브루스 윌리스는 두 여자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남자친구인 어니스트 멘빌 박사 역을 수행했다. 매들린과 헬렌은 남자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영원히 젊게 사는 기적의 묘약을 사서 마신다. 그 결과 두 여자는 목이 꺾이고 다리가 부러져도 죽지 않아 그야말로 생고생을 한다.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엽기적 비극을 유쾌하게 꼬집으면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국정을 그르친 혐의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과 촛불집회가 진행되던 무렵 소설가 이문열씨는 한 신문에 인상적인 글을 기고했다. ‘위기의 대한민국…보수의 길을 묻다’라는 기획물에 낸 글이었는데 ‘보수의 거듭남을 위한 죽음’을 요청한 게 골자였다. 그런데 어느 나라 여왕의 어지러운 통치와 잠적한 여왕을 닮은 창녀의 처형 이야기 등 특정인의 죽음을 권유하는 듯한 인용 내용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의미심장한 그 글의 시작과 중간 내용은 이렇다.

‘죽기 좋은 계절이다. 참으로 많은 죽음이 요구되고 하루라도 빨리 그 실현이 앞당겨지기를 요란하게 기다리는 시절이다. 매스컴은 그런 죽음을 예고하고 혹은 초대하는 이야기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악머구리 들끓듯 하고 광화문광장은 벌써 두 번째로 백만을 일컫는 촛불에 휘황하게 밝았다…(중략)…그런데 형장에 이르자 그렇게도 자신이 여왕이 아님을 주장하고 살려주기를 애원하던 그 창녀가 홀연 여왕의 의연함과 위엄으로 군중 사이를 가로지른 뒤 총살대 앞에 선다. 자신을 여왕이라고 믿고 있는 군중을 위해 여왕의 기품과 비장함을 스스로 연출한 것인데, 놀랍게도 군중은 진정한 애도의 눈물과 탄식으로 자신들의 여왕을 보낸다. 보아라, 우리의 여왕이시다. 여왕께서 의연히 죽음과 맞서신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창녀는 세상의 그 어떤 여왕보다 더 품위있고 고귀한 여왕이 되어 죽는다.’

죽어야 산다는 역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적용된다. 요 근래 있었던 대구은행 행장 구속사태와 지역출신 한 중견 정치인의 부적절한 처신이 좋은 사례다.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을 때 이들이 죽을 각오로 ‘모두 내 잘못이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며 먼저 당당히 나섰더라면 오히려 최악은 면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하직원과 후배들이 자리를 잃거나 구속되도록 해 비난을 받았다. 물론 자신을 던지는 결단과 용단은 쉽지 않다. 자칫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상을 입을 수 있고, 재기불능의 나락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감이지만 정치인은 잘 죽지 않는 특성을 지녔다. 아니, 죽었다가 곧잘 살아난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건 정치인 말고도 더러 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잡힌 줄 알았던 바둑 대마, 어느 순간 되살아나는 꺼진 불 등등 여럿이다. 완전히 죽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실비실 살지 말고 오히려 깨끗이 죽어야 한다고 재야의 고수들은 조언한다. 완전히 불에 탄 허허벌판에서 새로운 생명의 싹이 어느 순간 돋아나기에, 망하려면 완전히 쫄딱 망해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극심한 가뭄으로 바닥을 보인 하천에도 어느 날 신기하게 물고기들이 살고 있지 않던가.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듯 길이 끝났다고 완전히 행로가 끝난 게 아니다. 길이 끝나는 순간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고 했다. 인생에서 큰 위기를 모면한 것은 한 수 물린 것이라고 어느 고수가 술회했다.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 과감히 죽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살 수 있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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