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한국당, ‘패전처리투수’를 찾아라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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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09   |  발행일 2018-07-09 제30면   |  수정 2018-07-09
스카우트대상 그룹 잘못잡아
뜬금없는 인물들 거명되며
희화화된 비대위원장 찾기
승리 기약할 구원투수보다
패배 마무리 적임자 골라야
[송국건정치칼럼] 한국당, ‘패전처리투수’를 찾아라

자유한국당의 ‘비상대책위원장 찾기’가 희화화돼 버렸다. 생소한 ‘비대위 준비위’가 꾸려지더니 거론되는 인물이 40명가량 된다고 준비위원장(안상수)이 밝혔다. 그 중엔 발상이 기발(?)하지만 과연 진지하게 검토하고 영입대상에 넣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인물도 많다. 이문열·김진명 소설가가 거론되는 건 당에 정치적 상상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일까.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박근혜 지우기’ 용도일까. 도올 김용옥 교수가 포함된 건 당의 철학 빈곤을 고백하는 걸까. 최장집 교수 이름까지 나오는 건 지금부터라도 진보정당 흉내라도 내야할 필요성을 느낀 걸까. 이회창 전 총재를 끌어들이면 또 ‘대세론’을 형성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다시 전향시키자는 건 그가 정치권 미다스의 손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일까.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이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을 만난 건 당이 중증외상을 입었다고 진단한 까닭일까.

국민 눈에도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데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제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이정미), “농담이겠지…”(최장집), “예의가 없다. 불쾌하다”(이회창), “나와는 상관없는 집단”(김종인)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이국종 교수의 경우 “김성태 대행이 만나자고 했고 제안을 받았지만 안 하겠다고 거절했다”고 공개하는, 어색한 일도 벌어졌다. 물론 굳이 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 남편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다. 그는 “한국당 비대위원장 국민공모에 신청했다. 제안서에 12가지 혁신 과제가 들어 있는데, 보수의 원래 뿌리인 ‘공화당’ 당명 찾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웃을 수만도 없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2016년 총선 패배→2017년 박근혜 정부 탄핵과 대선 패배→2018년 지방선거 참패라는 동반몰락의 길을 걷고 있음에도 여전히 편을 갈라 기득권 지키기 싸움을 벌이는 탓이 가장 크다. 이 때문에 각 파벌은 ‘네임밸류가 그럴듯하면서도, 정치를 잘 몰라서 흔들기 쉽고, 밥그릇을 깨지 않을’ 사람이나 아예 실현불가능한 인물을 비대위원장감으로 경쟁하듯 거명한다. 그렇게 다른 속셈으로 접근하다 보니 본질엔 눈을 감거나 아예 놓쳐버린다. 그 결과, 스카우트 대상 그룹 자체를 잘못 설정한 상태에서 사람을 찾는 모순에 빠졌다. 지금 한국당에 필요한 건 ‘패전처리투수’인데, ‘구원투수’를 찾고 있다.

구원투수는 선발투수 이후에 나와 팀의 승리를 이끌어낸다. 마무리투수와 중간계투 요원이 마찬가지다. 반면, 패전처리투수는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내보낸다. 상대 팀에 많은 점수 차로 리드당하고 있을 때, 도저히 역전이 불가능하지만 게임은 마쳐야 하기에 등판하는 투수다. 한국당은 이미 세 게임에서 내리 졌다. 구원투수라고 내세워도 승부가 결정난 상태에서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건 패전처리투수다. 패배를 인정하고 마무리라도 잘 해야 한다. 더구나 다음 정치게임은 2년 후 21대 총선 때나 열린다. 그 사이에 강력한 구원투수가 등판해도 국민의 산술적인 평가를 받을 길이 별로 없다. 차라리 다른 선수들이 다음 게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자기 희생을 감당할 패전처리투수를 찾아서 등판시키는 게 비대위 준비위가 할 일이다. 패전처리투수(비대위원장)는 선발투수(차기 당 대표) 욕심이 없는 인물이 적격이다. 한국당 몰락에 직접 책임이 있으나 사심이 없는 원로나 중진, 혹은 제3지대에 머물렀던 사명감 있는 재야보수가 그 일을 할 수 있다. 비대위원장의 역할을 그렇게 제한하면 정파싸움을 벌일 필요도 없어진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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