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맹의 철학편지] 예멘 난민 논란…나라마다 국민이 될 수 있는 요건을 까다롭게 설정한 건지도 몰라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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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06   |  발행일 2018-07-06 제39면   |  수정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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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때만 되면 우리는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더 똘똘 뭉치게 된다. 이상할 것 없는,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요즘의 ‘축제’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이 마음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 봐. 태형아, 아마 그건 제주도에 무비자 입국제도를 통해 들어온 500여명의 예멘 난민들에 대한 기사와 논란 때문일 거야.

지금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과 이들을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어 있지.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들의 인도주의적인 의견과 그들이 가진 ‘잠재적 불안’과 자국민 우선주의에 대한 의견 모두에 ‘현실적으로’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쪽 의견 다수에 깔린 ‘이방인들 신경 쓸 시간에 고통 받는 자국민에게 더 신경을 쓰라’는 주장은 팍팍한 우리 현실의 반영이겠지.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로 박해를 받을 것이 예상되어 그걸 피해 자기 나라를 떠나거나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로 정의해. 우리나라는 난민을 좀 까다롭게 받는 모양이야. 2017년에는 1만명 정도가 난민신청을 했는데 121명만이 인정을 받았더구나.

사실 외국인의 국내 거주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지. 전체 인구의 4% 정도인 200여만명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모양이야. 노동자로 들어온 사람이 70만명, 결혼이민자가 14만명 정도. 전국 어디를 가도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 내가 일하고 있는 성주도 마찬가지야. 이제 궂은일은 거의 이들의 차지가 된 것 같아. 그런데 언젠가 너에게 말했듯이, 우리는 이들 노동자를 외국인 노동자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주 노동자’로 불러야 옳다고 봐. 이들은 이 나라 땅에 거주하며 삶을 영위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태형아,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국가란 무엇이고 민족이란 또 무엇일까? 영어로는 둘 다 ‘네이션(Nation)’. 이 네이션은 서구의 경우 16세기 중반 이후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의 형성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이후 부르주아혁명의 갈등기를 거치면서 지금의 국가 형태로 정착되었다고 학자들은 설명해.

그런데 문제는 이 국가가 ‘상상적 공동체’라는 것이야. 이런 주장은 전에도 소개한 철학자 발리바르가 ‘국민형태(Nation form)’라는 개념으로 소개한 바 있어. 국민형태란 개념은 네이션을 오랜 역사적 기원을 가지는 역사적 실체로 이해하는 거지. 어떤 구조적 메커니즘에 의해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 생산되고 다시 재생산된 것으로 이해해야 된다는 거지. 다시 말해 네이션을 통해 어떤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구조개념이 바로 국민형태라는 것이지. 네이션을 통해 국민이 생산되고 그 국민은 자신들을 국민적 공동체로 부단히 재생산한다는 거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네이션이 단순히 근대의 발명품이거나 헛된 이데올로기라는 얘기는 아니야. ‘상상적 공동체’는 우리의 현실이야. 문제는 이 네이션이라는 상상적 공동체가 현실적으로 왜 필요했냐는 것이지. 월러스틴 같은 세계체제론적 경제학자들은 ‘민족’을 근대 세계경제의 형성과 연결된 식민주의의 한 산물이라고 얘기해.

근대 민족주의가 개인들의 동질성을 묶어 이념적 공동체로 만들었어.‘국민국가’의 탄생이지. 그런데 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는 스스로를 사회주의국가로부터 단속하기 위해 국민국가에서 복지국가로의 이행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단다. 발리바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민국가에서 국민사회국가로의 이행이지.

이제 한 나라의 국적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져. 국적은 시민권과 동일한 것이 되어버렸단다. 국적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지지 못하게 되지. 그래서 한나 아렌트 같은 정치철학자는 ‘권리를 가질 권리’까지 주장하지.

태형아, 국경과 국적은 그 공동체의 시민이 되는 것, 다시 말해 그 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질 권리를 갖게 되는 거지. 그래서 나라마다 국민이 될 수 있는 요건을 까다롭게 설정한 건지도 몰라.

인권과 시민권. 어느 것이 더 근본적이고 공공선에 가까운 것일까. 선택이 쉽지 않은 요즘 정치철학의 쟁점 중 하나야.

얼마 전 한 예멘 사람이 신문 인터뷰 말미에서 한 말이 귀에 자꾸 울리는 구나. “우리 가족은 한국의 아름다운 섬을 파괴하러 온 괴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 시대의 ‘괴물(리바이어던)’일까? 시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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