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상)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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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06   |  발행일 2018-07-06 제37면   |  수정 2018-10-01
탱고와 축구에 빠진 채색의 도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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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카 주니어스 홈 경기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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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보카 지역. 입구 위의 세 인형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상징하는 마라도나, 에바 페론, 카를로스 가르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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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년 전통의 카페 또르또니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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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보카 지역의 화려한 거리 모습.

‘BA’로 약칭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혁명가 체 게바라, 노동자들의 어머니 에바 페론, 노벨문학상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최초의 미주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 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과 탱고의 전설 아스토르 피아졸라,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와 살아 있는 축구의 전설 리오넬 메시 등 가슴 벅찬 이 이름들이 BA를 수식하기 때문이다. ‘좋은 공기’라는 뜻을 지닌 ‘Buenos Aires’는 라플라타강의 하구에 자리한 항구 도시로 아르헨티나의 수도다. 이 도시에 처음 터를 잡은 유럽인은 1536년 스페인 귀족 출신 페드로 데 멘도사(Pedro de Mendoza)였다. 그 후 수많은 유럽인들이 이주해 남미 속의 유럽 도시로 성장했으며, 라틴 아메리카에서 백인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대공황 직전, 유럽이민자 70%나 몰려
‘라틴 아메리카의 파리’란 별명 얻기도
세계에서 공연·서점이 가장 많은 도시

탱고 발상지 라 보카로 가다
항만노동자 고단한 삶 표현 탱고·詩
향수·고독에 찌든 격정적 몸짓 표현
화가 마르틴·음악가 후안이 만든 마법
남루한 마을, 아름다운 예술로 탈바꿈

마라도나 배출 축구클럽 보카주니어스
가난한자들 지탱하는 신앙같은 존재
도레고광장 노신사·젊은 여인의 탱고
영화 ‘여인의 향기’ 보는 듯한 황홀함
바수르 160년 전통의 카페 ‘또르또니’
가장 가깝게 보는 탱고쇼 아쉬운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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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텔모 지역 도레고 광장의 탱고 공연. 노신사가 영화 ‘여인의 향기’의 알 파치노를 연상시킨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엄마 찾아 삼만리’를 기억할 것이다. 원작은 이탈리아의 아동 문학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단편 ‘아펜니노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다. 이탈리아 제노바에 사는 소년 마르코가 가정부 일을 찾아 잘사는 먼 외국으로 떠난 엄마를 찾으러 가는 이야기다. 이 소설이 나온 1886년은 본격적으로 유럽인의 남미 이민행렬이 시작된 시기다.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되었던 1880년부터 세계대공황 직전인 1920년대까지 BA에만 200만명 이상의 유럽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마르코가 찾아가는 그 ‘잘사는 먼 외국’이 바로 이 도시였던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파리’라는 별명은 이러한 경제적 토대 위에서 얻은 것이다. 그래서 BA는 풍부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적 자존심도 강한 도시다. 여전히 세계에서 공연이 가장 많은 도시이자 인구 대비 서점이 가장 많은 도시가 된 것은 이러한 문화적 축적의 결과물이다.

나는 지구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에서 비행기로 BA로 왔다. BA로 오는 내내 탱고 때문에 들떠 있었다. 1858년에 문을 연 카페 또르또니(Cafe Tortoni)의 전통적인 탱고 쇼도 예약해 두었다. ‘7월9일 대로’에 인접한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자마자 탱고의 발상지라는 라 보카 지역으로 갔다. 이민자들이 몰려들던 시대에 공업지구와 접해 있던 지저분한 항구지역 라 보카에는 마르코의 엄마처럼 이탈리아 출신이 주를 이루는 극빈층 이민자들이 모여 살았다. 이들은 주로 항구의 노동자였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가슴 깊이 품고 있었다. 이 시기 탱고는 벗어나기 힘든 가난과 체념에 빠져 살던 이들의 정서를 담아내면서 이들을 대변하는 예술이 되었다. 탱고가 지닌 강한 호소력은 향수와 고독에 찌든 이들의 격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입’이라는 뜻을 가진 라 보카는 마탄자 강의 입에 해당하는 강변에 자리 잡고 있으며, BA에서 가장 컬러풀하고 열정적인 지역이다. 이곳의 남루함을 아름다운 예술로 바꾼 사람은 이 지역의 화가 마르틴(Benito Quinquela Martin, 1890~1977)과 그의 친구이자 음악가 후안(Juan de Dios Filiberto, 1885~1964)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문화예술가 연대를 통해 이 지역을 예술가들의 메카로 만들기 시작했다. 마르틴은 골목과 집들을 밝고 강렬한 색으로 화려하게 채색하고 이 거리를 후안의 작품 이름을 빌려 ‘엘 카미니토(El Caminito)’로 명명했다. 후안도 그 시절 항만 노동자들의 삶을 시와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땅고 아르헨티노(Tango Argentino)’로 발음하는 아르헨티나 탱고를 만들어갔다. 이 두 예술가의 노력 덕분에 이 지역은 BA의 가장 예술적인 마을이 된 것이다.

이제 카미니토 거리는 이 지역의 메인 스트리트다. 곳곳에 눈을 사로잡는 조각과 그라피티 때문에 시선이 바쁘고 셔터를 들이대는 손놀림이 분주하다. 카메라 렌즈는 미처 눈이 발견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찾아내 마술 같은 색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탱고 선율로 발걸음을 옮기면 관능적인 탱고 댄서들의 춤동작에 시선은 멈추고 슬며시 잠재돼 있던 열정이 올라와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된다. 이처럼 이곳에선 모든 감각을 동시에 동원시켜야 한다.

라 보카의 여운은 보카 주니어스 경기장에까지 이어졌다. 약 100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5명의 젊은 친구들이 모여 창단한 축구 클럽이 보카 주니어스다. 마라도나 같은 세계적 선수들을 배출한 이 클럽은 가난한 라 보카 사람들을 지탱하는 신앙과 같은 존재다. 화려하게 채색된 거리에서 탱고에 젖거나 보카 주니어스의 경기장에서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같은 감정이다. 경기장 주변의 상점들은 모두 마라도나와 메시가 점원이다. 옷차림부터 가게 입구의 인형까지 이 두 축구 영웅의 존재감은 현재적이다. 색과 소리로 항만 노동자들의 애환을 예술로 바꾼 마르틴과 후안처럼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받은 이 두 축구 영웅은 화려했던 BA를 상기시키는 아르헨티나의 자존심인 것 같다.

BA의 초기 모습이 잘 남아 있는 산 텔모(San Telmo) 지역도 이곳에서 멀지 않았다. 멘도사의 스페인 원정대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이 이곳이니, BA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할 것이다. 중심가인 디펜사 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골동품 가게들과 일요일마다 서는 노천 벼룩시장은 산 텔모의 가장 큰 볼거리다. 마침 벼룩시장이 열리는 일요일이어서 거리는 온통 노점으로 들어찼고, 사람들에게 밀려다닐 정도로 붐볐다. 탱고 소리를 따라 도착한 도레고 광장의 탱고 거리공연은 라 보카에서 보았던 호객 행위로서의 탱고와는 확연히 달랐다. 동작 하나하나가 언어인 듯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내 감성을 자극한 것은 육감적인 젊은 아가씨와 하얀 머리의 노신사가 펼치는 공연이었다. 내가 탱고를 처음 접했던 영화 ‘여인의 향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알 파치노가 처음 탱고를 추는 젊은 여인 가브리엘 앤워를 리드하던 그 장면이. 이 광장의 노신사는 영화 속의 알 파치노와 묘하게 닮았다. 하필 영화에서처럼 카를로스 가르델의 명곡 ‘뽀르 우나 까베사’가 흘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파트너의 발을 밟을 것 같지 않는 능숙한 아가씨이지만 뒤에서 허리를 감싸 안은 그 노신사가 왠지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라는 알 파치노의 대사를 속삭일 것만 같았다. 탱고는 ‘하나의 가슴 네 개의 발’로 추는 춤이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춤추는 슬픈 감정’이라고 한다. 더 이상 적절한 표현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격정적인 사랑과 슬픈 이별을 예감하는 남녀의 짧고 강렬한 몸짓이 애절하다.

이 거리에는 탱고를 오페라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피아졸라가 즐겨 찾던 미켈란젤로 극장과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에 등장한 바 수르(Bar Sur)도 있다. 나는 영화의 장면을 회상하며 바 수르를 찾았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거리 모퉁이에 숨어 있어서 나처럼 영화에 대한 특별한 감상이 없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 것 같았다. 그래도 이곳은 탱고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장소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밖에서 봐도 몇 명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은 카페였다.

나는 카페 또르또니의 탱고쇼 예약 시간 때문에 서둘렀다. 거리 탱고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카페로 들어섰다. 카페 안은 역사가 묻어 있는 고풍스러운 모습이었고, 공연장은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다. 1858년에 문을 연 이 카페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BA의 영욕을 담은 공간이다. 아르헨티나의 모든 대통령은 물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아인슈타인, 힐러리 등도 이곳의 손님이었다. 게다가 BA의 문화를 대표하는 보르헤스나 가르델은 단골이다. 그래서 카페 또르또니는 커피를 마시러 오는 곳이 아니라 BA의 문화를 느끼기 위해서 오는 곳이다. 실내의 양쪽 벽면에는 수많은 그림과 액자가 빼곡하게 걸려 있다. 그 자체가 아르헨티나의 역사이고 문화다. 천장 중앙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황홀한 빛이 흐르고, 대리석과 가죽으로 장식된 테이블과 의자는 우아하다. 탱고 쇼는 지하의 극장식 무대에서 펼쳐졌다. 오늘만 세 번째 탱고를 보는 셈이다. 댄서들이야 별 생각 없겠지만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역사를 배경으로 펼쳐진 탱고에 나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관람했다. 카미니토 거리의 탱고는 호객을 목적으로 했지만 탱고 발생지로서의 역사성 때문에 노동의 의미로 치환될 수 있었고, 도레고 광장의 거리 탱고는 탱고의 첫사랑 같은 감정을 일깨워 주었다. 이처럼 앞의 두 탱고는 예정되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각각 역사적 배경과 영화적 환상을 동반하면서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정작 큰 기대를 했던 이 카페의 탱고는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스토리를 가진 쇼의 형식을 빌렸고, 무대·조명·객석도 좋았지만 젊은 댄서들의 조금은 기계적이고 현대적인 몸짓들이 영 몰입을 방해했다. 중간중간에 박수는 보냈지만 나의 환상을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쇼가 끝나고 카페를 나오는데 댄서들이 문 앞에서 해준 팬 서비스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관광객들을 응대하는 솜씨가 노련해 보였다. “Oh, my baby”라며 다리로 허리를 감고 포즈를 취해주는 젊은 댄서의 서비스는 잠시나마 댄서가 된 기분이 들게 하였다. 탱고는 격정적인 사랑을 해보고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한 사람만이 제대로 출 수 있는 춤이 아닐까? 탱고에 빠진 문화평론가 하재봉은 “탱고는 육체로 쓰는 영혼의 시”라고 했다. 그의 말을 알 것 같기도 했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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