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그는 왜 흉기를 들었나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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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05   |  발행일 2018-07-05 제31면   |  수정 2018-07-05
[영남타워] 그는 왜 흉기를 들었나
이은경 경제부장

대낮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흉기 폭행 사건, 이름하여 ‘궁중족발 사건’의 발단은 임대료였다. 건물주가 월 297만원이던 임대료를 월 1천200만원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하면서다. 서울 종로구 서촌 궁중족발의 적정 월 임대료(재판부가 업체에 의뢰해 평가된 결과)는 203만원.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를 실감할 만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김광석길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방천시장이 그랬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월세 10만~20만원으로 작업실을 열었다. 덕분에 시장도 살아났다. 김광석거리가 만들어지고 동네가 물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골목은 사람들로 넘쳤다. 사람을 좇아 돈을 따라 몰려든 것은 상업 자본이었다. 임대료는 자고나면 치솟았다. 손영복 작가와 정훈교 시인도, 20년 넘게 귀금속 가게를 운영했던 신금당 주인도, 생선가게를 하던 할머니도, 떡집 부부도 골목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식당·술집·카페로 채워졌다. 뜨는 동네의 어두운 그림자였다.

시민사회단체와 자영업자·소상공인 단체로 구성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전국네트워크’가 ‘최저임금보다 중소상공인들을 괴롭히는 이것’으로 상가 임대료를 첫손가락에 꼽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임차인을 보호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계가 뚜렷하다. 현재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시행령이 규정하는 최대 임대료 상승률은 연 5%다. 하지만 이 기준을 지키는 건물주는 거의 없다. 시설에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한 업주로서는 건물주가 터무니없이 임대료 를 인상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계약 이후 5년이 지나면 월세를 몇 배 올리든 건물주 마음이다. 그러나 5년은 투자 비용을 회수하기에는 너무 짧다. 임차인에게 계약 연장을 10년까지 보장해주는 방안도 나왔지만 국회에서 2년째 계류 중이다.

열심히 노력해 상권을 일으켜봤자 상가 시세 차익이나 임대료 상승으로 앉아서 돈을 버는 이는 결국 건물주다. 하루아침에 임대료를 몇 배씩 올려도 말 한마디 못하고 쫓겨나는 것이 세입자의 운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장사가 잘될수록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불평등은 제한된 재화를 둘러싼 욕구와 소유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제한된 토지 또는 부동산은 그 존재가 특별하다. 생산의 기반이 되지만 총량이 제한되어 있어 그 효용성의 편차가 심하다. 따라서 가격 체계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착취가 발생한다. 역사적으로도 반복되어온 모순이다.

한국은 GDP 대비 토지 자산 총액 비율이 4.2배에 달한다. 관련 통계가 있는 나라들의 평균이 대략 2배 수준인 반면 한국에선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다. 부동산 자산 총액도 2016년 1경713조원으로 2006년에 비해 75.4% 올랐다. 부동산 수익률을 5%라고만 가정해도 500조원의 자산소득이 발생한다. 그런데 2015년 기준 보유세 부담률은 0.15%로 OECD 13개국 평균(0.33%)의 절반에도 못 미치며 캐나다(0.87%)에 비하면 1/5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의 세금 제도가 자산불평등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고 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다.

부동산 개혁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개혁 과제의 하나다. ‘세금폭탄’이 됐든 ‘빛좋은 개살구’가 됐든, 이번 보유세 개편을 시작으로 한 중장기적인 부동산 세제개혁이 필요하다. 소득과 재산의 괴리를 줄여 집값 상승에 따른 부의 축적, 이른바 불로소득에 따른 불평등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현실이 왜곡되어 있다면 정책으로 바로잡을 수밖에. 달리 정치가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이은경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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