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백의 나이에 詩作 이순우 시인 “죽는 날까지 詩 찾아다닐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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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
  •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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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에 시·소설부문 등단

사별의 아픔 담긴 첫 시집 포함

권당 300여편 습작 총 7권 출간

시사랑회 부회장직 맡아 활동도

이순우 시인이 자신의 방 책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녀 넷을 낳고 기르는 동안 되풀이되는 일상에 회의와 번뇌를 느껴 삶의 무의미에 젖어들던 시절도 있었지만, 시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면 숨통이 트였습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에 대한 축복을 깨닫고, 살아야 할 의미와 가치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망백의 나이에도 시작(詩作) 활동과 독서·문학동인회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순우 시인(여·91·대구 수성구 황금동). 그는 문학의 인연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참 행복했다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그의 방에는 각종 문예지와 시집이 벽면을 한가득 차지하고 있고, 한쪽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다. 자작 시집과 동인지에 실린 소설을 찾아 보여주는 이 시인은 돋보기를 쓰지 않고도 술술 읽어 내려갔다. 그의 시(詩) 사랑은 창작활동뿐만 아니라 시를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까지 이어진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시사랑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

“죽는 날까지 ‘시(詩)밭’에서 없는 ‘너’(시)를 찾아다닐 것만 같아요. 시밭이 옥토가 될 때까지 다듬어 은방울 소리가 나도록 맑은 혼의 울림을 위해 오늘도 부단히 습작을 하고 있지요.”

일제 강점기 춘천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당시 일어로 번역된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문학의 꿈을 키웠고, 춘천여고 재학 당시 ‘시탑동인’을 구성해 동인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나의 놀이터였던 소양강가 밀밭길, 모래사장, 자갈밭, 봉의산 등이 문학의 원천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를 쓸 때 언제나 조용히 눈을 감고 심상에 의한 영감을 세밀하게 구상해 종이 위에 옮겨 놓습니다. 한 권의 시집이 탄생하기까지는 적어도 300편 이상의 습작을 했지요. 그래도 완전치 못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는 순수문학을 통해 40대 중반 늦깎이로 시와 소설부문까지 등단했다. 이후 모두 7권의 시집을 냈다. 음대 교수로 있던 여고 동창이 시 다섯 편에 곡을 붙여 ‘내 영혼의 만가’라는 제목으로 음악회에 발표하기도 했다고 들려줬다.

“내 나이 44세에 강원도내 주부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지요. 이듬해 제1회 소양문화제 백일장에서도 장원을 했습니다. 40대 중반에 백일장에서 연이어 장원을 하니까 신문과 방송에서 인터뷰하자고 연락이 많이 왔어요. ‘연세 높으신데 좋은 글 주셨다’며 그때 이미 노인 취급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참 잘살아왔네요. 한 번은 문화방송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 사업을 하던 남편은 전 직원의 작업을 중단시키고 함께 시청했다고 나중에 말해줬어요.”

그는 자신의 첫 시집 ‘이 거리에 서면’을 설명하면서 사별의 아픔을 가슴에 불사르고 다 타버려서 재가 되고 그 재를 뿌린 곳에서 탄생했다고 했다. 이희호 시사랑회 회장은 “1990년대 대구에서 시를 읽는 분위기를 만들고 전국으로 시사랑운동이 번질 수 있도록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우리 모임에서 이순우 시인은 어머니 같은 분”이라고 소개했다.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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