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와 함께!] “대구 동촌에 일본군 위안소 건물 지금도 있다”

  • 박태칠 시민,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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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04 07:09  |  수정 2019-01-14 10:26  |  발행일 2018-07-04 제2면
현재 동부署 동촌지구대 옆 추정
“2층 목조…20여 조선 처녀…日軍”
81세 강태진씨, 당시 상황 등 증언
희움역사관 건립때도 언급된 곳
20180704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소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 동구 검사동의 건물(푸른색 지붕 2개 동) 정면.

대구 동구 동촌에 일본군 위안소가 있었으며, 당시 위안소로 사용된 건물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증언이 새로 나왔다. 2012년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 건립 논의 당시 언급된 이후 6년 만이다. 3일 복수의 증언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설치된 일본군 위안소의 위치는 현재 동부경찰서 동촌지구대 옆 건물(대구 동구 검사동)로 추정된다. 위안소는 1944년 10월쯤 동촌비행장에 일본군 전투비행대가 주둔하면서 이곳 2층 목조건물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행대 소속 군인을 위한 이 위안소는 광복 때까지 10개월 정도 운영됐다.

주민 강태진씨(81)는 “세 살 때부터 동촌에 살았는데, 어린 시절 위안소 건물과 조선인 처녀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허름한 2층 목조건물에는 누나뻘 되는 20여 명의 조선인 처녀가 있었고, 가끔 반지하 같은 1층에 내려와 서성거리곤 했다”며 “지금의 동촌지구대와 한 업체 건물 사이에 난 좁은 길을 지나 둑이 있는 곳은 예전에 공터였는데, 일본 군인들이 위안소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곳이다. 일본 군인들은 큰 아까시나무에 총을 세워 놓고 두 줄로 대기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2층 건물에서 ‘이타이, 이타이’(아프다는 뜻의 일본어)라며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크게 들렸다고 증언했다.

그는 “광복 이후 위안소 건물은 말수레 바퀴를 만드는 공장, 고량주 제조공장 등으로 사용됐다. 지금은 겉모습이 많이 바뀐 상태”라며 “겉은 변했어도 뼈대는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한 주민은 “이 건물이 일본군 위안소로 사용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붕을 제외하고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그대로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나무로 된 지붕이었는데, 비도 새고 화재도 난 적이 있어서 지붕은 슬레이트 등으로 교체됐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소 인근에는 일본인을 위한 요정도 있었다. ‘팔성관’이란 이름의 이 요정에는 망토를 걸친 일본인들이 말을 타고 들락날락했다. 일본인들이 다닐 때면 조선인들은 풀베기 등 도로 정비에 동원되기도 했다. 박영석씨(여·78)는 “일본인들이 동촌 일대에 요정과 유원지를 만들었다.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흥청거릴 때 조선인들은 그들의 노예로 살았다”며 “지금도 요정 건물이 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소가 대구에 존재했다는 증언이 새롭게 나오면서 이곳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인순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장은 “위안부 역사관 건립이 추진되던 당시 해당 건물을 역사관 장소 등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나온 신문기사와 관련 증언 말고는 별다른 자료가 없어 연구가 부족했다. 어떤 형태로 운영된 위안소였는지 확인이 어려운 상황에서 섣불리 선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일본군 위안소에 대한 새로운 증언이 나온 만큼 연구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태칠 시민기자 palgongsan72@hanmail.net

글·사진=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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