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경남도청의 ‘홍준표 나무’는 왜 뽑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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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02   |  발행일 2018-07-02 제30면   |  수정 2018-07-02
부채제로 기념식수, 표지석
與 도지사 취임앞 뽑고 훼손
지방공무원 줄바꿔 서기와
진보단체 구시대 부정 상징
지방적폐청산 신호탄 될까
[송국건정치칼럼] 경남도청의 ‘홍준표 나무’는 왜 뽑혔을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경남도지사 시절인 2016년 6월 경남도청 정문 앞 화단에 ‘채무 제로’ 달성을 기념해 사과나무를 심었다. 나무 앞엔 ‘채무 제로 기념식수 경남도지사 홍준표’라고 쓴 표지석도 세웠다. 취임 3년6개월 만에 1조3천488억원에 달하던 경남도의 빚을 다 갚은 의미를 되새기고 후임 도지사들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워주자는 취지였다. 이 사과나무는 잘 자라지 못했다. 경남도는 이후 두 차례나 주목으로 바꿔 심었다. 하지만 두 번째 주목도 최근까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해 시들시들한 상태였다. 결국 경남도는 6월27일 주목을 뽑아냈다. 대신 표지석은 그대로 뒀다. 그러자 다음 날 ‘적폐청산과 민주사회건설 경남본부’ 회원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나타나 표지석을 파낸 뒤 뒤집어 땅에 묻었다. 이어 표지석을 묻은 자리에 올라서 ‘홍준표 적폐청산 만세’를 삼창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홍준표 나무’와 표지석 철거 소동에서 여당이 압승하고 야당이 참패한 6·13 지방선거의 거센 후폭풍이 감지된다. 어제(7월1일) 임기가 시작된 민선 7기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어느 때보다 정치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경남도 공무원들은 신임 도지사(김경수)가 취임하기 나흘 전에 전임 도지사(홍준표)가 치적을 자랑하며 심은 나무를 뽑아냈다. 아무리 나무가 말라 죽은 상태이고, 진보단체에서 뽑아내란 압력이 있었어도 신임 도지사의 선택에 맡겨야 했다. 김경수 신임 도지사 측은 나무를 뽑아낼 때 사전 논의가 없었고, 표지석 훼손은 유감이라는 입장이다. 앞으로 부산·울산·경남을 비롯해 보수 시·도지사에서 진보 시·도지사로 바뀐 곳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의 같은 처지인 시·군·구 기초단위에서도 공무원들의 급격한 줄 바꿔 서기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런 현상과 맞물려 ‘지방정부 적폐청산’도 예고돼 있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6월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재인정부 2기 국정운영 위험요인 및 대응방안’을 보고했다. 여기에 “과거 정부를 타산지석 삼아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반부패정책협의회를 통해 올 하반기에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상대로 감찰에 들어갈 계획”이란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문 대통령은 “지방권력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반부패정책협의회는 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감사원 등으로 구성된 기구다. 따라서 중앙의 사정기관들을 총동원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대대적으로 감찰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청와대는 감찰 대상이 어제 임기를 시작한(민주당이 사실상 장악한) 지방정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감찰을 하다 보면 임기가 얼마 되지 않은 단체장보다는 그 이전 한국당이 장악했던 지방권력으로 넘어가기 쉽상이다.

지방자치제도의 기본취지를 훼손하지 않는다면, 또 실제로 부패 같은 적폐가 있다면 지방권력도 사정의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다만 경계할 점은 있다. 무엇보다 ‘정치’가 개입하면 안 된다. 그러면 지난 1년 동안 진보와 보수가 프레임 경쟁을 벌였던 ‘적폐청산-정치보복’ 논쟁이 전국의 지역사회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갈등이 생긴다. 현 정부 출범 후 정부 각 부처별로 설치한 적폐청산TF를 각 자치단체에 적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아울러 정치권이나 시민단체가 나서서 사정기관을 압박할 수도 있다. ‘홍준표 표지석’ 훼손 소동은 그런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지방정부를 감찰하더라도 철저히 사법논리만 적용해야 한다. 정치논리나 광장의 논리가 개입하면 그건 곧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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