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뮤직톡톡] ‘고유수용감각’으로 느끼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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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9   |  발행일 2018-06-29 제39면   |  수정 2018-06-29
[김명환의 뮤직톡톡] ‘고유수용감각’으로 느끼는 음악
막대춤 공연 중인 무용수 아만다 폰 크라이비히.

악기를 배우려는 자들의 공통된 질문이 있다. “얼마 배우면 어느 정도 흉내나 낼 수 있을까요?”다. 연습 기간에 대한 문의도 많다. 대답 또한 단답형으로 해야 할 상황이 대부분이라 형식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능력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순 있겠지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꾸준히 연습하셔야 될 겁니다.”

애매한 질문에 두루뭉술한 대답이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드럼교습학원도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실용음악과라는 과목도 없었다. 연주 잘한다고 소문난 형님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의 수발을 들며 어깨 너머로 악기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 여겼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도 그때가 내겐 행운이었고 여러 연습실을 거쳐가며 만났던 형님들이 고맙기만 하다.

악기를 웬만큼 연주하려면 얼마나 오래 연습해야 할까? 이건 “인생이 뭐라 생각하십니까”란 질문과 비슷하다. 오늘 이 글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연습해야 하는 것인지 시간을 떠나 감각을 통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

[김명환의 뮤직톡톡] ‘고유수용감각’으로 느끼는 음악

옛 어른들의 말이 생각난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까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부의 일정 수준과 음악의 어느 정도는 비슷한 느낌의 노력과 투자를 전제로 한 얘기다.

우리 몸의 ‘고유수용감각’은 몸의 일부가 없어진 뒤에도 느낄 수 있다. 다리를 잃어버린 후에도 없어진 부위에서 계속 통증이나 가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 증상은 수개월 심지어 수년이 지나도 지속된다. 없어진 다리가 자꾸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소위 ‘유령감각’이라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몸의 외부에 있는 무생물한테도 그 감각이 연결될 수 있다고 한다. 1927년 무용수 아만다 폰 크라이비히에게 팔다리와 몸의 곳곳에 12개의 막대를 묶고 춤을 추게 했다. 막대의 길이는 각각 달랐고 긴 것은 3m 넘는 것도 있었다. 이 춤을 안무한 이는 무용수에게 몸의 감각을 모든 막대의 맨끝까지 투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처음 무용수는 몸을 가누기는커녕 숨쉬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씩 불편함이 줄어들었고 더 나아가 막대를 무용수의 손발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는 주위의 공간과도 교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몸과 몸에 연결된 도구가 무용수뿐만이 아닌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드럼을 연주하려면 역시 두 개의 스틱이 필요하다. 그 막대기가 내 몸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내가 멘토로 여기고 있는 뮤지션들의 연주를 보면 그의 스틱이 몸의 일부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너무 거창한 이론을 갖고 독자를 겁주려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얼마나 악기를 연습해야 하는가란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단순히 시간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것 같다.

취미로 배우는 분들에게 마치 나도 못한 대가의 감각을 느끼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도구(악기)를 내 몸의 일부는 아니더라도 스틱을 잡고 휘두를 때 어색함을 없애는 정도까지는 연습해야 될 것 같다. 그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드럼은 양팔의 능력이 동등할수록 유리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오른손잡이는 왼손이 오른손의 능력과 동등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상도 왼손으로 해보기로 결심하고 보리 모양의 작은 알갱이들이 들어 있는 과자 한 봉지를 사서 왼손으로 그 과자를 다 먹어본 적도 있었다. 지금도 왼손 젓가락질은 여전히 어색하
기만 하다. 하지만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불편함을 주는 그런 어색함은 아니다. 악기를 다룰 때 평소 젓가락질 정도의 감각만 익힌다 해도 중도포기 없이 어느 정도 연주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악기 정복을 위해 노력 중인 사람에게 중국 속담 하나를 던져주고 싶다. ‘나는 듣고 잊는다. 나는 보고 기억한다. 나는 행하고 이해한다.’ 재즈드러머 sorikong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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