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수돗물 안전불감증에 걸린 정부

  • 조정래
  • |
  • 입력 2018-06-29   |  발행일 2018-06-29 제23면   |  수정 2018-06-29
[조정래 칼럼] 수돗물 안전불감증에 걸린 정부

“안전하다.” 낙동강 취수원에서 검출된 발암물질인 과불화화합물이 기준치 미달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낙동강 취수원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기준치를 훨씬 상회한다. 급거 내려온 안병옥 환경부 차관의 이러한 안전 발표와 이를 증명하려는 듯한 ‘수돗물 마시기 퍼포먼스’는 수돗물 불신에 따른 생수 사재기 등 일련의 파동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낙동강 오염 사태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려 온 대구시민은 이제 어떠한 수질검사 결과 기준치와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더라도 수긍하지 못한다. 낙동강 불신의 고질(痼疾)에 걸렸다. 정부가 수질 안전 타령보다 더 안전한 방안을 왜 제시하지 않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대구취수원 이전이 정답이다. 물 퍼오는 곳을 오염원 위로 옮기자는 주장은 당연한 거 아닌가. 안전은 경제적 비용과 갈등 등 모든 비용에 우선하는 가치다. 구미산단의 폐수 정화와 재사용 등 수질관리는 환경부 고유의 업무로 취수원 이전과는 무관하게 상시로 이뤄져야 할 맑은 물 대책이다. 그러나 인재(人災)에 의한 불시의 오염 사고는 어쩔 텐가. 중앙정부 관료들이 페놀사태와 다이옥신 유출 등 낙동강 오염일지를 제대로 한 번이라도 봤다면 감히 ‘안전’을 입에 쉽게 올리지 못한다. 현재 위험은 상존한다. 향후 회피할 방도 역시 있다. 그러나 그 방안을 실현하지 않는 것은 수돗물 안전을 도외시하는 불감증이고 대구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라는 말인가. 대구시와 구미시 사이 합의가 먼저라는 정부의 발뺌은 수수방관이나 다름없고 조정 역할의 포기일 뿐이다. 취수원 이전 문제가 제기된 지 10년이 다 돼 가는 동안 정부는 손 놓고 있었고, 두 지자체가 민간협의까지 구성하고 격론을 벌인 결과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평행선을 달리는데도 아무런 중재도 하지 않았다. 물 분쟁은 예로부터 있어왔고, 제3자 개입 없이 당사자끼리 원만하게 해결된 사례가 없다는 것도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구미시민의 집단 반대는 정부의 조율·조정 없이는 넘어서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필요할 경우 장사꾼의 거간과 흥정 능력, 그리고 당근책도 구사돼야 한다.

오염원 관리를 잘 하고 일부 문제가 되는 오염물질은 잘 정화해서 먹으면 인체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앵무새 소리는 중앙 정부의 고질적인 지방 홀대고 무시다. 말이 나왔으니까 한번 짚어보자. 사드만 해도 그렇다. 국토 방위의 효율성 차원에서 보면 수도권에 배치하는 게 당연하다.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이 왜 경주에 위치해야 하고, 원전은 왜 또 모두 비수도권에 입지하고 있나. 지방은 위험시설의 집적지이고, 수도권 위험 외주화의 전진기지다. 지방 사람들은 교육부 관료가 개·돼지로 지칭한 민중 중에서도 하층 민중인가. 안전과 목숨의 가치도 수도권 주민 위주로 생각하는 중앙 정부 관료들은 지방 민중의 고통을 안주 삼아 잔치판을 벌이는 영화 속의 ‘내부자들’인가.

수돗물 안전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인식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보편적인 안전불감증과도 맞닿아 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눌 줄 모르는 공감불감증은 돌림병처럼 우리 모두를 전염시켰다. ‘이게 국가냐’는 어린 학생들의 외침과 촛불은 어느 날 갑자기 발화된 게 아니다. 문제는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정부도 달라진 게 없다는 거다. 정부와 관료의 안전불감증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치유불능 수준이다. 이러한 안전불감증 앞에 ‘수돗물’을 놓으면 우리의 실상과 꼭 들어맞을 터이다.

유사시 페놀사태와 같은 대형 오염사고가 터졌을 때에는 생수 먹으면 된다고 할 텐가. 오염원을 원천적으로 피할 수 있는 취수원 이전 방안이 있는데 굳이 독극물 배출원을 머리 위에 인 채 위태위태하게 살아가야 하나. 대구취수원 이전의 당위성은 이처럼 명명백백한데 정부의 방관은 부당성을 더해간다. 꿈쩍도 않는 중앙 정부의 지방 사람 홀대가 도를 넘었으니, 도백조차 ‘추풍령 이남에도 사람이 산다’고 하지 않았겠나. 맑고 안전한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대구취수원 이전 100만 서명운동’을 포함한 정부 불복종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비상사태다.

조정래 논설실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