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11시간의 용기, 다시 읽는 학도병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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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6   |  발행일 2018-06-26 제30면   |  수정 2018-06-26
포항여중 전투에서 보여준
학도의용군의 11시간 용기
피란민과 낙동강전선 지켜
학도병 일기 다시 쓴다면
전쟁 없는 나라 원했을 것
20180626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지난 21일 전국 유일의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을 찾았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학도의용군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2002년 건립됐다. 전승관 뒤편 탑산에 있는 포항여중 전투에서 순직한 이우근 학도병(당시 17세, 서울 동성중 3년)의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비’를 보고 싶었다. 포항여중 전투는 6·25전쟁 중 학도의용군이 단독으로 수행한 유일한 전투다. 이 편지는 이 학도병이 전투에서 숨지기 직전 일기 수첩에 어머니께 적은 편지 형식의 일기다. 이 수첩은 숨진 이 학도병의 교복 상의에서 피가 묻은 채 발견됐다.

“8월10일 목요일 쾌청. 천신만고 끝에 포항에 도착했다. 교복은 누더기가 되고 신발은 신은 것인지, 벗고 다니자니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에 그저 걸치고나 있다고 할까. ~중략~ 팬티와 러닝을 빨아 입었다. 땟국물이 많이 나왔다. 내복은 청결히 빨아 입었으니 이제 언제 죽더라도 수의는 마련된 셈이 된다.” 이 학도병이 포항여중 전투가 있기 하루 전에 쓴 일기다. 자신의 죽음을 예단하는 내용이 곳곳에 배어있다.

다음 날인 1980년 8월11일 새벽 4시30분 71명의 학도의용군은 포항여중에서 북한군 정규부대(인민군 766부대)와 전투를 시작한다. 학도병들은 자신의 키만 한 M1소총과 각 250발의 실탄과 수류탄밖에 없었다. 반면 북한군은 전차까지 앞세웠다. 결과는 뻔했다. 48명이 숨졌다. 그래도 학도병들은 이곳에서 11시간30분을 버텼다. 이들의 11시간 용기 덕분에 포항시민과 피란민 등 20만여명이 형산강을 건너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전열을 정비한 국군 3사단은 북한군 수중에 넘어간 포항을 사흘 뒤인 14일 수복했다. 그 결과 낙동강전선이 더 이상 뚫리지 않게 됐다.

전투 중 쓰인 이 학도병의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보면 당시 전투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 수 있다.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명은 될 것입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중략~ 아 그들도 사람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전쟁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도 배어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 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중략~ 인민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무섭습니다.”

이 학도병 편지의 백미는 죽음을 앞둔 당시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중략~ 어머님!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중략~ 문득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들이켜고 싶습니다.”

여러 번 쓰다가 말다가를 반복한 이 학도병의 편지는 “어머님!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로 끝이 난다. 미완의 편지인 셈이다. 그가 살아서 지금쯤 그 편지를 이어 쓴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까.

전승관을 찾은 그날은 평일이라 방문객은 뜸했다. 학도의용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학도의용군 포항지회 김문목 회장을 포함한 몇몇 어르신이 당시를 회상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동시에 남북 긴장 완화를 빌미로 느슨해지고 있는 안보관을 걱정했다. 국가에 대한 서운함도 숨기지 않았다. “많은 학도병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상당수 학도병이 재입대하기도 했지만 정부 차원의 합당한 보상이나 예우는 없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매월 30만원 정도의 참전수당 지급이 전부다. 일부 국회의원이 ‘소년소녀병 보상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으나 부처 간 이견으로 폐기됐다.

“어머님! 어제는 6·25전쟁 발발 68년째 되는 날인데 예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정말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온 걸까요.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은 더뎌지고 있는데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해도 안보에 아무런 문제는 없을까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합당한 보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전쟁 없는 나라에서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이 학도병이 살아서 끝맺지 못한 편지를 지금 이어 쓴다면 이렇게 마무리하지 않을까.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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