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자세히 보면 달리 보인다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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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5 08:01  |  수정 2018-06-25 08:01  |  발행일 2018-06-25 제21면
“선입견 없이 아이들 행동 바라보면 더 사랑스럽다”
보자마자 불쾌감이 들었던 명화
얽힌 이야기 들으니 감동적 그림
아이 행동 겉만 보고 판단말아야
자세히 보면 행동의 이유 알게돼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자세히 보면 달리 보인다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우연히 세계 명화집을 들여다보던 아들이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무슨 그림이 이래? 뭔가 불쾌한 그림이야.”

아들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뭐지?’ 하는 마음에 명화집을 같이 들여다봅니다. 다시 책 표지를 확인하게 만드는, 눈이 번쩍 떠지는 그림입니다. 그 순간 나도 이 그림을 보면서 ‘이게 명화야’ 하는 무식함이 앞섭니다. 한참을 보고 있다가 이 그림이 이렇게 전 세계에 퍼져 나가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몬과 페로’라는 그림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루벤스라는 작가가 그린 ‘시몬과 페로’라는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립 미술관 입구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백발의 늙은 죄수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가슴을 빠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얼핏 보면 정말 추하고 불쾌한 감정이 생기는 그림입니다. 그러나 고대 로마 역사가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전하는 사연을 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그림 속 남녀는 아버지와 딸 사이라고 합니다. 늙은 죄수는 감옥에 갇혀 굶어 죽는 형벌을 받게 된 아버지 시몬입니다. 그는 로마인으로 반국가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어 체포된 뒤 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확정받게 됩니다. 그리고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음식물 반입 금지’라는 아주 가혹한 형벌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외동딸 페로는 해산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거운 몸으로 아버지 면회를 갑니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이 왔기 때문입니다. 면회를 간 페로는 음식물 공급이 금지된 감옥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막상 면회가 이루어져 아버지를 보는 순간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한 채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에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느다란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 앞에서 딸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고 불은 젖을 간수의 눈을 피해 아버지의 입에 물렸습니다.

그 뒤로 페로는 그렇게 감옥으로 아버지를 면회 가서 자신의 젖을 물려 아버지의 목숨을 연장시키게 되는데 머지않아 간수들에게 발각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국왕에게 알려지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국왕은 효성스러운 딸의 행위를 가상히 여겨 마침내 시몬을 풀어주게 됩니다. 죽음의 문턱을 오락가락하던 시몬은 효성스러운 딸의 젖을 먹고 극적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었으며 아버지에게 젖을 먹인 딸 페로의 효심은 마침내 아버지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로마에서도 효성에 대한 인륜적 가치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였나 봅니다.

이 그림을 보면서 나는 처음 떠올렸던 불쾌감이 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을 하거나 오해하고 남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래 들여다보며 진실을 알고 나면 사실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생기는 선입견이 얼마나 많은 오류를 낳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집에서 우리 아이들의 행동과, 학교에서 학생들의 행동을 단지 표면적인 것만 보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그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모두가 숭고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건성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알고 진지하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어떤 것도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게 해 준 이 그림 한 편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이 그림을 보고 나서 다시 읽는 나태주의 ‘풀꽃’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명화집을 보고 있는 아들을 자세히 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그림을 들여다보던 아들이 고개를 들고 저를 한 번 보더니 씩 웃습니다. 참 예쁩니다. 그리고 사랑스럽습니다. 명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아들은 ‘시몬과 페로’ 그림을 한참 들여다봅니다. 그러더니 “이 그림을 보니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라고 합니다. 불쾌했던 그림이 눈물이 나는 그림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김원구<대구포산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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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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