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원의 ‘영남일보로 보는 인물열전’ .6] 최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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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1   |  발행일 2018-06-21 제29면   |  수정 2018-07-05
‘대구 사진 개척자’ 1930∼40년대 공모전 휩쓸며 이름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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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복은 광복 후 남조선문화영화사의 주간을 맡아 천연색 영화작업을 벌이는 등 영화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영남일보 1947년 3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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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남조선예술사진연구회에서는 남조선에 활약하고 있는 카메라맨을 총망라한 작품을 모집하게 되어 서울에서 이번 제1회 전람회를 개최하였는데 응모인화 600점 중에 엄선한 결과 입선 수는 60점이며 지방적으로 구별하면 서울 30점, 대구 21점, 부산 4점, 인천 3점, 안성 2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구 관계 입선자는 다음과 같다. 입선자는 최계복씨~’

10대부터 사진연구단체에 가입
일제강점기엔 사진재료상 개업
광복후 경북사진단체·학원 운영
필름작업을 통해 영화도 제작

후진양성에 힘쓰다 미국 이민
65년 뉴욕에서 개인전 열기도



부녀일보 1947년 7월3일자에 나온 남조선예술사진전람회 기사다. 서울의 남조선예술사진연구회가 주최한 공모전에서 최계복은 입선했다. 공모전에서는 평론 등의 활발한 활동을 펼친 구왕삼이 준특선으로 뽑히는 등 대구 출신이 상을 많이 탔다. 입선 수에서 보듯 당시 대구는 사진 열기가 꽤나 뜨거웠던 도시임을 알 수 있다. 광복 직후 열린 공모전에 참가할 정도면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진 활동을 해왔음은 쉽게 짐작이 간다.

최계복 역시 일찍이 사진과 친했다. 10대 때 사진연구단체에 가입한 뒤 사진촬영을 시작했다. 당시는 사진 재료가 귀했던 데다 국방 재료로 분류돼 아무나 마음 놓고 거래할 수가 없었다. 그럴 즈음 최계복은 대구부 경정1정목(지금의 대구시 종로1가)에 최계복사진기점을 열었다.

일제가 식민통치 목적으로 ‘사진기점’조차 관리하고 있을 때였다. 또 그는 1938년 경성일보사의 사진공모전(인화현상모집)에 준특선과 입선으로 동시에 뽑혔다. 이 공모전은 아침 햇살처럼 떠오르는 일본을 의미하는 조양영도(朝陽映島)라는 이름이 붙은 대회였다.

그는 해방공간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1945년 계철순과 함께 경북사진문화연맹이란 단체를 조직했다. 이태 뒤에는 한국사진예술학원을 설립해 직접 운영했다. 사진 촬영을 포함해 사진 관련 기술이 대중적이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는 사진촬영 강습회 등의 단골 강사이기도 했다. 사진기술에 대한 애착심은 남달랐다. 카메라가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카메라에 대한 기술적 점검과 지식을 강조했다. ‘필터 사용법’ 등을 신문에 기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조선영화계에 있어 아직까지 총천연색영화 제작품이 없었는데 오랫동안 이 방면에서 숨은 노력과 연구를 집중하여 오던 대구 출신 남조선문화영화사 주간 최계복씨의 제작인 백여 피트의 천연색 영화가 요즘 현상이 끝나서 방금 편집중이나~’

그는 사진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 분야에도 관심이 컸다. 특히 영화에 상당한 애착을 가졌다. 영남일보 1947년 3월5일자 기사는 그가 필름작업을 통해 천연색 영화를 만드는 데 성과를 냈다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그는 이에 앞서 광복 직후 창립되어 이름이 바뀐 영화사인 남조선문화영화사의 주간을 맡고 있었다. 이후에도 그는 사진작가연맹 대표최고위원 등을 지내며 작품심사와 강의, 후진양성 등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다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의 사진 관련 활동이 마지막으로 언론에 소개된 것은 1965년 3월 미국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었다는 것이 전부다. 전시작품인 ‘백두산 천지’ 같은 백두산 사진의 경우 촬영시점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미국에 간 이후에 찍은 사진이 아니라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백두산 조사 활동에 참가해 촬영한 사진일 수도 있다.

최계복은 일생 카메라맨으로 살아오며 자부심 또한 컸다. 사진은 값싼 예술이란 인식이 퍼져있던 그 시기에 제대로 대접받는 사진가가 되기를 바랐다. 당시 그가 시나 소설과는 달리 촬영자의 이름을 뺀 채 게재하는 언론의 관행을 나무란 이유와 맞닿아 있다. 그는 언론기고에서 사진제작의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이야기했다.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함으로써 작가다운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스스로에게 던진 자문자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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